[한국 근현대사] 신돌석과 한국 독립전쟁
- 최초 등록일
- 2004.06.24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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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돌석은 1878년 (고종15)~1908년까지 한말의 대표적인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강원도와 경상도지에서 의병세력을 구축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순경(舜卿), 본명은 태호(泰浩), 이명은 돌석(乭錫), 태흥(泰洪)으로, 경북 영해(盈海) 출신이다. .
선생은 1878년 11월 3일 경북 영해군 남면 복평리(현재 영덕군 축산면 부곡리)에서 신석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이 태어난 영해는 이필제 난의 중심지였다. 1870년부터 약 1년 동안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이 난은 삼남민란 이후 최대의 반(反)봉건 농민운동이었다. 따라서 이곳은 농민들의 반봉건 의식이 유독히 드높은 고장이었기 때문에 선생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시정부는 모두 7군데로 실제 수립은 3곳이고, 전단상 정부는 4곳이었다. 이후 행정부 일원화가 제기되고, 정부 소재지 문제와 통일 민족 기구의 수립 문제로 임정 통합에 의한 일원화가 제기되어 각 지역의 임정을 통합하였다; 이는 한성 정부 계승을 결의하고 국내 13도 대표를 민족대표로 인정하였으며, 상해 임정의 행정은 유효하였다. 정부는 상해에 두었는데, 이유는 조계지에 설치하는 것이 유리하며 국내외 동포와 연락이 편리하고 애국지사들의 활동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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