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 로마의 발전과 이에 따른 문화의 형성
Ⅱ. 로마의 기독교: 기독교의 형성과 전파
Ⅲ.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의 배경
1. 정치적 원인
2. 사회적 원인
3. 종교적 원인
IIII. 기독교 박해의 역사
1. 기독교 박해의 과정
2. 기독교 박해에서 공식 국교까지의 선포 과정
Ⅳ. 결 론
본문내용
Ⅰ. 서론
대제국을 이루었던 로마(Rome)는 처음에는 기원전 8세기, 테베레(Tevere) 강가 언덕의 도시국가로 출발하였다. 로마의 공화정은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Augustus, BC63~AD14)에 의해 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즉 '존엄한 자' 라는 칭호를 얻은 후에 군대와 재정을 장악하였다. 그는 원로원을 그대로 두는 증 공화정의 겉모습은 존중하였으나, 중요 관직은 독점하여 사실상 황제와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는 개혁정치를 펴 로마를 안정시켜 나갔다. 이후에도 로마는 최대 영토를 확보하여 상업과 교역을 발달시키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마는 광활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실용적인 학문과 문화를 필요로 하였다.
로마는 문화의 창조보다도 선진 문화의 수용과 보급에 중점을 두고 이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닌, 발전에 중점을 두었다. 로마가 이룩한 정치제도, 법률, 종교, 토목공사 등은 고대 어느 민족의 문화보다 뛰어났다. 로마는 그리스(Greece)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정신적인 조화의 미를 추구한 그리스에 비해, 실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로마의 회화, 조각, 건축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으므로 독창성은 떨어졌지만, 이를 모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발전시켰다.
로마의 종교는 처음에는 다신교로 시작하였다. 독특한 종교를 소유하지 못했던 로마인은 그리스의 신들을 도입하여 그대로 신앙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정치적 통일을 굳건히 하기 위해 종교적인 숭배가 요구되었으며, 여기서 황제숭배 사상이 나왔다. 크리스트교 전파 초기에 로마 황제들은 크리스트교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점차 크리스트교도 숫자가 늘어나고, 이들이 황제 숭배와 군복무를 거부하자 이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5~316)황제 때 가장 큰 박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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