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로마제국과 기독교
- 최초 등록일
- 2003.10.08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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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 로마제국과 기독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초기 로마제국의 역사 = 기독교 박해의 역사
2.밀란칙령과 콘스탄틴
3.중세 크리스텐돔의 형성과 발전
4.동, 서방 기독교의 결별
본문내용
밀란칙령과 콘스탄틴
네명이 서로 제국을 장악하려다가 결국 콘스탄틴과 막센티우스의 전쟁으로 압축되게 된다. 두 사람은 312년 10월 28일에 이탈리아의 밀비안(Milvian) 다리 위에서 싸우다가 막센티우스 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이로써 콘스탄틴이 제국 전체의 주인이 된다. 막센티우스를 이긴 콘스탄틴은 라키니우스와 313년에 밀란(Milan)에서 만나 전쟁을 중지할 동맹을 맺었는데 이곳에서 맺은 협정의 일부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그들의 교회와 묘지, 기타재산 등을 반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밀란칙령(edict of milan)‘ 으로 알려져있으며,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밀란칙령이 기독교역사에 중요한부분으로 자리매김하나 부정적인 요인도 가져다주게 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긍정적인 면은 박해의 시대가 끝나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기독교의 확산을 가져온 것이고, 부정적인 면은 기독교 신앙의 세속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참된 믿음이 없으면서도 국교가 된 기독교의 특권을 갖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본질이 퇴색하고 형식만이 무성하게 되어서 기독교의 부패를 재촉하게 되었다.)
결국 콘스탄틴은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고 이에 따라 로마의 종교정책은 일대 전환을 보게된다. 콘스탄틴이 이전의 황제들과 다른점은 기독교의 토대위에서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복원하려 했다는 점이다. 콘스탄틴은 새로운 로마(New rome) 건설을 위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 로 옮겼고, 그후 얼마 안되어 로마를 포함한 제국의 서방이 야만족들에 의해 점령되자 콘스탄티노플이 제국의 정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으로도 불리게 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집권한후의 최대 변화는 박해의 종식이다.이제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공포속에서 전교활동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로서 어용신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