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탈로치(Pestalozzi)의 교육사상 : 페스탈로치의 생애, 페스탈로찌의 교육사상(인간관, 교육목적, 교육방법)
- 최초 등록일
- 2015.10.08
- 최종 저작일
-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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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페스탈로치의 생애
II.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1. 인간관
2. 교육목적
3. 교육방법
본문내용
I. 페스탈로치의 생애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살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조그마한 지방의 목사였던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민중들의 빈곤한 생활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것은 후일 그가 민중들의 구원하기 위해 그의 전 생애를 바치는 귀중한 경험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목사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하다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법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768년 노이호프에서 농장 경영을 시작하였으나 실패하자 1774년에 이 농장에 빈민학교(Volksschule)를 세워 아동들을 교육하였다. 그는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빈민 아동들의 자립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 빈민학교도 재정난에 부딪혀 1780년에 문을 닫았다. 그는 그 후 18년 동안 칩거하면서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다. 그는 자기가 실천하지 못한 교육적인 이상을 "은자의 황혼"(1780)을 통해 서술하고 있고, 이 시기에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1781-1987), "입법과 영아살해"(1783),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자연의 길에 관한 나의 탐구"(1797) 등을 저술하였다(노이호프 시절).
그는 1798년 슈탄츠에 전쟁고아들을 모아 문을 열었던 고아원을 맡게 되었다. 그는 헌신적으로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는 이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우리는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 ‥우리는 빵과 국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가족과 친구와 시중드는 조수도 없었다. 오직 그들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잠잘 때까지도 늘 함께 있었다. 우리들은 함께 기도하며 공부하였습니다. 나는 항상 병에 전염될 위험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옷과 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인간 본성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본성은 거칠고 혼탁한 진흙 속에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소질과 기능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