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쉘러 겔렌 철학적 인간학
- 최초 등록일
- 2015.05.18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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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칸트
1) 귀족 교육과 당시의 공교육
2) 칸트의 교육학
3) 당시 교육과 칸트의 교육 이상 비교
2. 쉘러
1) 쉘러의 ‘인간’
2) 하이데거의 ‘인간’
3) 쉘러의 ‘인간’과 하이데거의 ‘인간’ 비교
3. 겔렌
본문내용
나는 칸트 시대의 귀족 교육, 그리고 공교육과 칸트의 교육학에 대해서 비교, 생각해보고 최대한 나만의 독자적 생각으로 전개해보는 주제로 정하였다.
1) 귀족 교육과 당시의 공교육
이를 위해 먼저 칸트가 살던 당시의 교육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칸트가 살던 시기는 18,19C로, 주로 18C를 위주로 말을 해볼까 한다. 18C는 절대주의 사회였다. 이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시민사회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봉건세력과 부르주아세력이 놀랍게도 사회에 동시에 녹아있던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때문에 절대주의 사회 교육의 목적은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고 동시에 강화하기 위함이었으며 공교육 또한 국가적인 학교체계를 가진다. 이것이 봉건사회의 교육과 절대주의 사회의 교육이 다른 점이다. 절대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교육권이 교회에서 국가로 이관되었으며, 이에 따라 교육의 중점도 기존의 고전, 인문, 종교에서 벗어나 점차 세속화되었다.
이러한 초기 절대주의 사회의 학교제도는 당연히 절대사회의 근간이 되는 귀족 자제가 교육의 중심이었으며 이에 따라 민중교육과 서민교육은 등한시되었던 것은 자명하다. 절대주의 사회는 중앙에 힘을 집중하는 사회였으므로 이러한 중앙집권제도의 정비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상비군의 강화, 그리고 이로서 추진되는 영토확대정책의 취지에 맞게 지적 수준이 높으며 교양을 갖춘 고위 관료와 고위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정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귀족중심의 교육에 반발하여 일반민중의 교육적인 요구 또한 증대되었고, 이에 대한 결과로 민중교육기관이 정비되었으며 근대적인 공교육제도도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었고, 아동을 위한 초등의무교육제도 또한 생겨났다. 지금까지 18세기의 절대주의 사회 교육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교육들의 목적은 부국강병과, 이러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갖춘 선량한 신민(臣民)의 육성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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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