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경제와 공업탑
- 최초 등록일
- 2015.01.02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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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 수업 <경제와 국민생활>의 과제였던 공업탑 방문 후기 및 역사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울산의 경제성장
2. 공업탑
3. 공업탑의 경제적의미
4. 공업탑의 공간적의미
5. 공업탑 방문기
본문내용
1. 울산의 경제성장
1962년 울산이 특정 공업지구로 결정된 이후 울산의 공업단지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1960·1970년대 울산공업단지의 성장은 국내 최초 최대의 임해 국가공업단지로 울산·미포 국가 산업단지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서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온산 국가산업 단지로 이어진다. 공업센터 지정이후 가속 화된 공업화로 1차 산업은 구조적으로 저하되는 반면 광공업의 2차 산업 주도의 산 업구조를 갖추었다.
경제자유화 시기였던 1980-1000시기에는 울산공업단지의 발전으로 정리할 수 있다. 1980년대 울산공업단지는 자동차공업의 급성장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규모의 확대와 부품업체의 집적이 활발했다. 1990년대에는 석유정제 및 중화학공업과 함께 도시기능 활성화를 위한 공업의 개발을 포함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 자유무역의 심화와 국제금융 위기에 따라 국내의 많은 지방 도시들이 경제적 침체에 직면한데 비해, 울산의 경우에는 기업, 지방자치단체, 시민의 노력으로 산업 수도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한상진, 울산대학교)
1960년대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최초의 국가공업단지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열고 한국 중화학공업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현재 울산은 군내 광공업 생산액의 15.2%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제1의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에쓰오일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몰려 있는 산업메카로 발전한 것이다.
“이 곳 울산에서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부활을 마련 하겠다” 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급격한 공업화로 울산은 2011년 대망의 수출 1000억달러를 달성하는 등 국내 제1의 수출도시로 우뚝 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