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국가의 성립과정
- 최초 등록일
- 2014.07.06
- 최종 저작일
- 2014.03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가야
본문내용
고구려의 시조는 부여에서 탈출하였다고 전해지는 주몽이다. 대개의 건국설화가 그러하듯이 주몽설화 또한 주몽의 신이한 능력과 하늘의 뜻을 이어받았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주몽설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주몽은 다른 지역에서 졸본지역으로 넘어온 이주민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구려의 초기는 부족 연합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백제 건국설화에서 나타나는 주몽설화를 살펴보면 주몽은 과부였던 소서노와 재혼을 하여 그 기반을 닦았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로 고구려는 초기에 5부족 연맹체로 시작을 하였다. 그러므로 최초의 고구려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였다기 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연맹왕국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 실제로 초기에 맹주 역할을 하였던 소노부는 연맹체 구성집단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한(漢)과의 대외관계에서도 각각의 부들이 개별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러던 것이 점차 발전을 하면서 구심점을 갖게 되는데 이 무렵에 부여에서 건너온 주몽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졸본지역에 정착하여 기존의 세력들(주몽설화에서 나오는 소서노일행으로 추측된다.)과 연합하여 소노부와 연맹체의 맹주권을 놓고 다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이후에 연맹체 국가의 맹주로 등장한 계루부(주몽세력을 일컫는다.)는 좀 더 원활한 지배를 위해 초기의 졸본지역에서 벗어나 국내성으로 천도하게 된다. 이후 각각의 부에서 중국과 관계를 맺던 것이 점차 사라지고 단일화된 창구로 관계를 맺게 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점차 중앙집권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후한에 사신을 보내 칭왕(稱王)하였다는 기록은 고구려가 본격적인 중앙집권국가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 (삼국의 정치와 사회 1,고구려)』, 200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6 (삼국의 정치와 사회 2,백제)』, 200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7 (삼국의 정치와 사회 3,신라 가야)』,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