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민간종교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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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민간신앙
1) 풍수설과 도참설
2) 미륵신앙
3) 무속신앙
4) 혁세적 민중종교 운동
2. 동학
3. 서학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조선 후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농업 생산력 증대와 그로 인한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등으로 말미암아 농민층의 경제력 성장과 계층분화가 이루어 졌고, 이는 곧 조선후기 신분구조의 변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으로 민중의 의식은 점차 성장해 가고 있던 반면, 지배층 내에서는 특정 가문에 의한 권력 독점 현상과 이로 인한 내부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국정의 문란과 농민의 수탈은 점점 더 심해져갔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의 창궐로 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이양선이 침입하였고 서양 문물의 전파로 서학서가 유입되던 시기였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조선후기 지배질서에 대한 민인층의 불만과 저항은 점차 고조되었고 이에 성리학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당시 성장하고 있던 민인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체계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실학’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유학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던 것으로서 민인층의 현실적 상황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중 략>
1839년(헌종 5)에 일어났던 천주교에 대한 탄압사건으로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사건 당시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으로 천주교의 교세는 현격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1802년 순조가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삼은 이후 시파에 속하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탄압이 약화되자 천주교의 교세는 다시 확대되고 신자 수는 늘어갔다. 36년 프랑스의 외방전교회의에서 조선 교구를 독립시키고 선교사 모방, 샤스탕, 앙베르 등 3명을 비밀리에 조선에 파견해 전도에 종사하게 하자 비밀교회가 생겨나고 신자 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순조가 죽고 헌종이 8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순원왕후는 벽파인 풍양 조씨와 손을 잡고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시작했다. 조선정부는 39년 3월 다시 사학 금지령을 내리고 천주교도를 대량 체포했으며 7월에는 서양선교사 3명마저 처형했다. 천주교도의 적발방법으로는 5가작통법을 적용했다.
참고 자료
민간종교
서병진/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전개와 복지정토 관점에서의 조명
장성규/《朝鮮王朝實錄》의 風水地理文獻 硏究 : 《靑烏經》ㆍ《錦囊經》ㆍ《狐首經》을 中心으로
한승훈/ 조선후기 혁세적 민중종교운동 연구 - 17세기 용녀부인 사건에서의 미륵신앙과 무속
동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천주교
김혜미/ 조선후기 민인층의 천주교 수용과 의미
오영란/ 조선 천주교회의 창립과 그 특성에 관한 연구
조광/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
한국고중세사사전 / 한국근현대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