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향촌사회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4.05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문
ⅰ. 사족지배체제
ⅱ. 상한들의성장
ⅲ. 동성촌락
- 형성
- 구조와 운영
ⅳ. 향전
ⅴ. 향회
ⅵ. 민중결사 – 진주민란
- 민중결사
- 민란; 진주민란
Ⅲ. 나가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18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사회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신분제가 이완되어 갔고, 민중사회가 성장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조선 후기의 호적자료를 검토해 보면, 양반호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노비호는 급속히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양반호가 급속히 늘어가게 된 까닭으로는 국가의 만성적 재정난과 군정(軍政)의 문란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노비수가 급감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 농법의 발달과 토지 생산성의 증대와 관련되는 현상이었다. 18세기 전반 이후 신분별 호구 비율의 급격한 변동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더불어 새롭게 생겨난 조세 징수 방식은 신분제의 이완을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 17세기 조선왕조 사회에서는 국역부담에 있어서 민인의 한계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중 략>
즉, 새로이 향회에 참가하게 된 요호층의 이해관계가 기존의 지배층과 동일할 수는 없었다. 이들이 향촌사회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었을 때 일차적으로는 기존 지배층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야했다. 그에 따라 향회는 점차 민의를 결집하고 대변하기 시작했다. 향회에서는 불법수취를 강요하는 관권에 대항하는 방법이 논의되었고, 등소운동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이들의 합법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전 시기까지 재지사족층의 지배기구였던 향회가, 그 구성원에 있어서도 일정한 변동이 있게 되면서 단지 부세결정 과정에서 관권을 대변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이제 역으로 기층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게까지 된 것은 이 시기 민중의 성장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수령에 대한 인사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읍정을 향회에서 주관하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그 역할이 다양해져가고 있었다. 이후 향회는 민중운동의 중요한 기간조직으로 변화해가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