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교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1.18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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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
임진왜란 발발
임진왜란 종전
임진왜란이 조선과 일본에 미친 영향
임진왜란 그 이후의 한일 관계
본문내용
문학이나 역사에 비해 수학이나 과학을 더 좋아하는 공학인이라 역사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흥미를 갖고 있진 않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국사를 공부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해선 유독 관심이 많았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다. 광화문에 가면 역을 기준으로 세종대왕 동상보다 항상 먼저 보이는 이순신 장군 동상. 동상을 볼 때마다 늘 내 몸 속엔 알 수 없는 전율이 흐르곤 했다. 난중일기나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를 보면서 참 그는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려운 현실 속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해 가는 그의 모습에 경건함이 느껴졌다.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제작, 해류의 흐름을 파악하여 전란을 마무리 지은 명랑해전 등등.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떠올리면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이 많다. 진주성 전투의 김시민 장군,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 등등. 우연찮게 선택교양 과목 중에 한국과 일본에 관련된 교양을 찾게 되었고 '한일 교류의 역사'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한 주제에 대해 작문을 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띈 주제가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였다.
<중 략>
노무현 정권에서 한국은 이웃 나라들에 대하여 강경한 외교를 벌였다. 일본과의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에 강한 자세로 임하여, 반일운동이 활발하였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주관하여 2002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잠시 소원해졌다. 그러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후쿠다 야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금 양국 관계에 순풍이 불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전 정권에서 악화된 인근 국가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일본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자세로 임할 방침을 보이고 있다. 2008년 4월 대한민국과 일본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중시하는 실용외교를 기반으로 ‘미래지향적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한편으론, 여전히 양국 간에는 외교적 현안이 많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