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삼국유사-무왕설화
- 최초 등록일
- 2003.05.13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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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통대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문
삼국유사의 소개와 체제
Ⅱ. 본문
1. <삼국유사>제2권 기이편(紀異篇) 무왕설화
2. 무왕설화에 대한 소감
Ⅲ. 결론
삼국유사에 대한 감상과 의의
본문내용
Ⅰ서문
고려 충렬왕(충렬왕) 때 승려 일연(일연: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유사)를 모아 지은 사서(사서)로 권 2책. 인본(인본). 〈삼국사기〉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저작과정과 시기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일연의 나이 70세(1276) 이후에 저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75세(1281) 이후 2, 3년 사이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유사〉가 마지막으로 정리되어 완성된 시기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이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저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이전부터 부분적으로 기록해두었던 내용을 이때 집중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유사'(유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기워 보완한다는 성격을 가진다. 국가의 대사업으로 편찬된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와 자료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편찬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중국 중심적이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다루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기존의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 점은 승려인 일연의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일연이 이를 저작할 당시는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골의 침략이 계속되어,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모화사상)이 비판되고 민족자주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다. 일연의 저술의도에는 이같은 민족감정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