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국사 시대구분 논쟁
- 최초 등록일
- 2013.10.12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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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일본의 중국 중세사 시대구분 논쟁
1) 경도학파의 입장
2) 동경학파의 입장
3. 맺음말
본문내용
1945년 太平洋戰爭 敗戰은 일본의 軍國主義·帝國主義에 대한 자국민의 불신과 비판을 낳았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인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 이후로 시작된 明治維新은 일본의 近代化를 이끌었다. 이 당시만 해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가장 빨리 접어든 국가였고, 자신들 또한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이러한 자부심은 일본으로 하여금 식민지 확보라는 대외적 확장 정책에 눈뜨게 만들었고 조선과 중국으로 식민지 개척을 나서게 된다. 일본의 이 정책은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앞서 말한 태평양전쟁에서 자신의 근대화 모델이었던 西歐 列强들에게 패전했다. 그 결과로 자신보다 열등한 국가로 생각했던 중국은 승전국이 되어있고, 1949년 중국에서 半封建운동인 社會主義革命이 일어나자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역사연구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자만과 독단에 빠진 일본사관에 대한 비판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중국사의 停滯性論을 世界史의 보편적 발전 단계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타파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의 학자들은 중국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자신들의 식민지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했던 '중국의 역사적 정체'가 아닌 '중국의 역사적 진보'로 관점이 변화한 것이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 논의를 펼치게 되는 주제가 바로 '중국 역사에서 중세사에 해당하는 시기를 언제로 설정할 것인가'이다. 中世란 古代와 近世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시기가 존재하므로, 이 중세의 시기만 설정한다면 3분법에 의한 중국사의 고대·중세·근세의 발전 단계는 자동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東京學派와 京都學派, 이 두 학파가 논의를 펼치게 된다. 경도학파는 나이또오 도라지로오(內藤湖南)와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를 필두로 文化史的 입장에서 시대구분을 하고자했고 동경학파는 가토 시게시(加藤繁)와 마에다 나오노리(前田直典)를 필두로 하여 史的 唯物論을 바탕으로 중국사의 시대구분을 하고자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중국사의 시대구분을 달리했다.
참고 자료
민두기편, 『中國史時代區分論』, 창작과 비평사, 1984.
타니가와 미찌오 저, 정태섭 역, 『일본의 중국사논쟁』, 신서원, 1996.
민성기, 「中國中世史 究 六朝隋唐의 社會와 文化 」,『동양사학연구』 제6집, 동양사학회,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