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론] 만해 한용운의 생애와 시적 접근
- 최초 등록일
- 2003.02.06
- 최종 저작일
- 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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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 론
1. 시인으로서의 한용운
2. 생활인으로서의 한용운
3. 종교인으로서의 한용운
4. 독립운동가로서의 한용운
5. 한용운의 사상
II. 본 론
1. 한용운의 시와 기다림의 역사성
1.1 이별과 사랑의 자발성
1.2. 기다림과 영원함과 적극성
1.3. 절망과 역사적 전망
2. <님의 침묵>대한 해석학적 접근
III. 결 론
본문내용
만해는 1897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본관이 청주인 부친 한응중과 모친 창성 방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한학에 몰두하여 모친으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의인결사를 꿈꾸며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청년으로 자랐다. 본명은 유천이며 자는 정옥이다. 연곡화상에게 계율을 받을 때 계명을 봉완이라 하였고 법명을 용운이라 하였다. 만해는 그의 법호다. 출가전 13세 때 향리에서 정전숙과 결혼하였으며 그 사이에서 아들 보국을 두었는데 만해가 출가한 뒤에 태어났다. 1933년 유원숙과 두 번째 결혼, 그 사이에서 딸 영숙을 두었다. 5척 단신의 작은 키였으나 어릴 때부터 남달리 힘이 세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시력이 좋아 노년에도 늘 책을 가까이 하였고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았으나 지기를 만나면 폭음을 했다고 한다. 평생동안 거처하는 방에 불을 지피지 않았다. 조선전체를 커다란 감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따뜻한 온돌에서 지내는 일을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항상 두루마기의 순수한 한복 차림을 고집했다. 일반인으로 교우한 인물로서는 이시영, 김동삼, 신채호, 정인보, 박광, 홍명희, 권동진, 오세창, 방응모, 김병로 등이 있고, 불교계의 인물로는 박한영, 송만공 등과 특히 우의가 두터웠으며 김적음, 백용성, 박고봉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 후배로는 최범술, 조종현, 김관호 등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