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과 이병철
- 최초 등록일
- 2002.11.30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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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니마니 가져가세여~~~~
목차
1. 이병철과 정주영 자서전을 쓰다
2. 이병철
1) 일제시대 오렌지족의 생활
2) 첫 사업, 그리고 실패
3) 1938년 삼성의 출발
4) 해방 후의 삼성 발전
5) 이병철식 경영이란?
3. 정주영
1) 정주영의 특징 : 이병철과의 비교
2)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3) 가난한 농민의 아들, 4번의 가출
4) 일제시대 쌀장사와 자동차 정비업
5) 해방 후 현대의 출범
6) 왕회장 신화
4. 이병철과 정주영 무엇이 다른가요?
5. 이병철과 정주영 연보
1) 이병철
2) 정주영
본문내용
이병철과 정주영은 모두 자서전을 썼습니다.
이병철은 76세인 1985년 정초(正初)에 {호암자전}을 썼고(출판은 1986), 정주영은 83세인 1997년 세모(歲暮)에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썼습니다.(출판은 1998년) 이 두 사람은 70, 80의 나이에 그러니까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마감하고 정리한다는 의미로 자서전을 썼습니다. 정주영은 1991년 77세에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홍보나 과시용 성격이 강한 것이었습니다. 83세 쓴 {이 땅에 태어나서}가 오히려 더 진솔한 편입니다. 어쨋든 이 두 사람이 자서전을 쓴 연령은 76세 이후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입니다. 50대의 나이에 죽음을 무릎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자서전을 썼던 김구나 장준하가 자선전을 쓴 경우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의 수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회고록 형태의 자서전, 그것은 죽음을 앞두고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엄숙한 의식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조 유학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학자들의 경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서 묘갈명(墓碣銘)을 미리 써 둔답니다. 묘갈명이란 한 인간의 일생을 축약하여 새긴 다음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돌을 말합니다. 이 내용은 그의 문집에 남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축약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과 정주영도 자서전을 쓰면서 인생무상이라는 감회를 느꼈던가 봅니다. 자서전의 서문과 마무리글을 쓴 시점을 보면, 이병철은 정초였고, 정주영은 세모였답니다.
마지막 계절, 추운 겨울 만물이 고요하게 잠들어가는 계절에 그들이 자서전의 서문을 쓰면서 가장 먼저 떠 올린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때 그들이 떠올린 것, 그것은 그들이 가장 원했었던, 그리고 가장 의미를 부여했던, 그리하여 일생 동안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답니다.
한국의 재벌, 부자, 기업인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애착을 가졌던 일, 우리는 그것을 자서전의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은 {호암자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