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세계
- 최초 등록일
- 2002.11.29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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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마천 생애와 {사기}의 저술
1) 사마천의 가계
2) 사마천의 생몰연대
3) 태사령이라는 관직
4) {사기}의 집필 동기
5) 상대부 호수 와의 문답
6) 이릉의 화
7) 발분의 서 {사기}
2. {사기}의 성격
1) 성격
2) 발분의 서
3) 혹리
3. 사마천의 세계
본문내용
1. 사마천 생애와 {사기}의 저술
1) 사마천의 가계
① 전욱의 시대에 남정(천문을 관측하는 관리) 중은 하늘에 관한 직무를 맡았고, 북정(지리를 담당하는 관리) 여는 땅에 관한 직무를 맡았다. 당우시대에 중과 여의 자손들이 다시 그 직무를 맡아 하와 은대에까지 이르렀다. 주대의 정백이었던 휴보가 여의 후손이었다. 주선왕시기에 그 직위를 잃고, 사마씨가 되었다. 사마씨는 대대로 주나라의 역사 기록을 담당하였다.
② 주혜왕ㆍ양왕시기에 사마씨는 주를 떠나 진으로 갔다. 사마씨가 진으로 들어간 후부터 그들은 여기 저기에 흩어져 위ㆍ조ㆍ진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위에서 살던 사마씨의 일족 중에는 중산국의 재상이 있었다. 조에 있던 사마씨의 일족은 검술을 조나라에 전승하였다. 괴외(괴외)는 그 후손이다. 진에 있던 사마씨의 일족 중에 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촉 정벌에 관하여) 장의와 논쟁하였다. 진혜왕은 사마착을 시켜 촉을 정벌하였다. 착의 후손인 근은 무안군 백기를 섬겼다. 근은 무안군 백기와 함께 장평지전에서 조의 군사 45만명을 갱살하였다. 근의 손자 창은 진에서 철관의 장을 맡았다. 진시황시기에 괴외의 현손인 앙은 무신군 무신을 섬겨 조가를 평정하였다. 항우가 18제후왕을 분봉할 때, 은 그 공을 인정받아 은왕이 되었다. 초ㆍ한지전에 한에 투항하였고, 그의 봉지는 하내군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