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읽고나서
- 최초 등록일
- 2012.09.16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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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징비록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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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이 상황을 기록한 책으로 임진왜란의 시대적 상황과 임진왜란이라는 난리를 겪은 사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징비록의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유성룡이 그이 저서에서 밝혔듯이 시경의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라는 문구에서 따온 말이다. 즉, 유성룡은 이 징비록을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일을 회고하고, 반성하여 뒷날 이러한 일이 없게 미리 조심하도록 경고하고자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책을 저술한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중에서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고 명종 21년(1566)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이 유성룡은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 장군인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 또한 도학·문장·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안동의 병산서원 등에 모셔졌다.
<중 략>
임진왜란 발발 전 조선 조정 내에서는 붕당정치라고 해서 신하들이 두 파로 갈려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툼을 벌였다. 서로 이익을 위해 인사권이나 정책 등을 무리하게 시도하거나 묵살시키기 위하여 논쟁을 벌여서 당시의 대외적 상황을 살피지도 않았고 그 때문에 이이의 십만양병설도 묵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동태를 살피려고 했으나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황윤길과 김성일이 서로 다른 당파였으므로 엇갈린 주장을 하였고 결국 조선조정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전쟁의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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