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건릉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04.22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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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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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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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에 대한 소개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 1-1번지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적 제 206호로 지정된 문화유적지로서, 능역의 면적이 70만 5653제곱미터에 이른다. 융건릉이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둘째 아들이며 사도세자로 더 잘 알려진 정조의 아버지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릉, 정조와 호의선황후가 잠들어 있는 건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융건릉의 주산인 화산(花山)은 ‘어린 서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국’의 길지로 천 리 안에는 없는 터이고, 천년 만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최고의 명당이라고 전해온다. 이와 같은 길지에 자리잡은 융릉을 답사하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서 표지판의 안내대로 오른쪽으로 들아가면 융릉이 있고,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건릉이 나온다. 수목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길은 산책로로서 더없이 훌륭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자랑할 만 하지만, 특히 겨울철 눈 온후의 경치가 장관이다. ‘화성팔경(華城八景)’ 가운데 제 1경이 융건백설(隆健白雪)인데, 능역에 빽빽이 들어선 노송 위에 백설이 쌓은 빼어난 경관을 일컫는 말이다.
이 곳 융릉에서 영면하고 있는 장조는 1735년(영조11년) 1월 21일 창경군 집복헌에서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선술, 자는 윤관이며, 어머니는 영빈 이씨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추종황제 진종)가 요절하고 영조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2세 때인 영조 12년 3월 15일 왕세자에 책봉되고, 10세 때에 영의정 홍봉한의 딸과 가례를 올리고 별궁에 거처했다.
세자는 총민하여 3세때 <효경>을 외우고, 7세때 <동몽선습>을 떼었다. 또한 글씨를 좋아하여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눠주었고, 10세 때 벌써 정치에 대한 안목이 생겨 집권 세력인 노론이 처결한 신임사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세자는 효심과 우애심이 두터웠고, 왕세자로서의 도량과 덕을 겸비하고 있어 부왕 영조로 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참고 자료
조선의 왕릉(이호일 지음/가람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