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의 생애와 삼균주의
- 최초 등록일
- 2011.12.24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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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소앙의 생애와 삼균주의 A+받은 자료
목차
1. 들어가며
2. 생애
3. 삼균주의
4.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20세기 초 중국의 쑨원은 ‘삼민주의’를 통해 근대적 국가를 꿈꿨다면 한국에는 광복 전후 로 조소앙의 ‘삼균주의’, 안재홍의 ‘ 신민족주의’, 백남운의 ‘연합성 신민주주의론’, 박헌영의 ‘진보적 민주주의론’, 이승만의 ‘일민주의’, 오기영의 ‘새 자유주의’ 등을 통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중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유토피아적인 국가이론이다. 즉 정치, 경제, 교육문화에서 평등을 강조하는 점에서 달콤한 이론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소앙의 국가건설론인 ‘삼균주의’가 오늘날에 적합한지 그의 생애와 삼균주의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생애
조소앙(趙素昻)은 1887년 경기도 교하군(현 파주시)에서 조정규와 박필양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용은(鏞殷)이며, 호는 아은(亞隱), 소앙이다. 어려서 조부에게 한학을 수학하였던 그는 성균관을 거쳐, 1904년 황실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교부립제일중교에 입학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유학은 순탄치 않았다. 즉 1905년에는 가츠우라 토모오교장이 한국 학생들이 열등하다는 민족차별적인 발언을 하자 동맹파업으로 항의하였다. 그 후 1908년 3월 명치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유학시절 동안 공수학회(共修學會)와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간부로서 유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1909년 12월에 일진회 성토문 기초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10년 8월에는 대한흥학회 차원에서 추진한 ‘합방’반대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의 인생행로와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일본유학이었다.
참고 자료
김인석, 「조소앙의 삼균주의」, 『광복 전후 국가 건설론』,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8.
김기승, 「조소앙」,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한시준, 「조소앙의 삼균주의」, 『한국사 시민강좌10』, 일조각,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