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 조만식 조소앙 조사
- 최초 등록일
- 2005.04.06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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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소앙
2. 조만식
본문내용
1. 조소앙 趙素昻 (1887~?)
독립운동가·정치가. 본명은 용은(鏞殷). 경기도 파주(坡州) 출신. 1906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에 입학, 수학하면서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를 주 도 하였다. 11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양정의숙(養正 義塾)·대동 법률 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3년 중국에 망명, 신규식(申圭植)·박은식(朴殷植) 등과 동제사(同濟社)에 참여하였고, 18년 만주 지린[吉林]에서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를 기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듬해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적극 참여하여, 임시정부의 국체(國體)와 정체(政體)의 이론정립 및 대외홍보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하였으며,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 국무원비서장, 의정원의원 등을 지냈다. 19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사회당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한국의 자주독립과 그 당위성을 역설하는 등 외교사절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29년 김구(金九)·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삼균주의(三均主義;정치·경제·교육의 均等)에 기초하여 <태극기 민족혁명론>을 제창하였다. 34년 삼균주의를 국시(國是)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건국강령>을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채택하도록 하였고, 40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43년 한국독립당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45년 충칭[重慶] 임시정부 외무부장으로서 광복을 맞았다. 귀국한 뒤 줄곧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였고, 반탁투쟁위원회 부위원장, 삼균주의청년동맹 위원장 등을 맡아 비중 있는 활동을 하였다. 48년 김구·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平壤)에 갔으나 실패하자 방응모(方應謨) 등과 사회당(社會黨)을 조직, 당수가 되었다. 그 뒤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하고 정부수립에 불참했다가 50년 5월 제 2 대 국회의원선거에 서울 성북구(城北區)에서 입후보,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되었으나 6·25 때 납북되었다. 북에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나 58년 9월, 조작된 <엄항섭(嚴恒燮) 사건>에 항의,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병사하였다. 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소앙문집(1970)》 《한국문원(韓國文苑, 1932)》 《유방집(遺芳集, 1938)》 등이 있다. <다음백과사전>
참고 자료
다음백과사전고당 조만식 기념 사업회 http://www.godang.or.kr/『학생백과대사전-한국의 인명』 중앙출판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