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제국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1.11.26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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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희제에서 옹정,건륭에 이르는 청나라의 역사를 중심으로 소수민족인 만족이 중국 전체를 지배한 역사를 소개한 글이다.
목차
1장. 세 얼굴의 제국
2장. 민족통합, 그리고 건국에서부터 대청국의 성립까지
3장. 중국 내지 진출에서 절대군주권의 확립까지
4장. 최대 판도의 형성 - 제6대 건륭제 시대
5장. ‘화이일가’ 다민족 왕조의 확립
본문내용
1장. 세 얼굴의 제국
청조는 만주에서 발흥하여 전 중국을 장악했으며 역사상 중국 제국 중 최대 판도를 형성했다. 비록 가경제 때의 백련교도의 난을 시작으로 근대 서양 열강들에 의한 이권 침탈 등으로 우리에게 청조는 체제 유지에만 급급하여 쓰러져가는 왕조라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지만 건륭 시대 역사상 최대 판도를 형성하기까지의 청조는 세계으뜸의 대제국이었다. 한족이 아닌 여진족이었기에 중화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다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경제적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발흥했기 때문에 정복의 수단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여진족에게 유동성과 활력을 부여해주었다. 이처럼 여진족은 ‘오랑캐’와 ‘중화’의 양면성을 가지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대제국을 건설했다.
청조는 중국 정복 이후에도 여진족의 족장인 한(han)과 중국의 황제를 겸하는 이중 통치 구조를 유지했다. 청조는 이른바 만-한-번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제국이었다. 이러한 양면성은 청조의 궁궐의 편액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경의 옹화궁과 심양의 궁궐, 그리고 만리장성 너머 내륙아시아에 위치한 승덕의 피서산장에는 만주어, 한문, 몽골어, 위구르어가 한 편액에 나란히 쓰여 있다. 또한 청조에 편찬된 저서는 모두 만, 한, 몽골어를 병기하고 있다. 청조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만-한-번의 삼중 구조를 파악해야만 한다.
청조는 중국 역대 왕조 중 당(唐) 왕조 다음으로 긴 기간 대륙을 지배했다. 더욱이 청조는 역대 왕조와는 달리 몽골고원, 티벳, 위구르, 타이완 등 동북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을 아우름으로서 다민족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주자학 중심의 유학과 관료제 등 많은 제도와 사상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전제왕조의 성격을 나타내는 동시에 만주족의 전통적 두발형을 한족에게도 강요한 치발령, 만한병용책, 팔기제도 등은 유목적 부족사회의 성격을 나타내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몽골 세계, 티베트 세계, 그리고 이슬람 세계의 일부인 위구르까지 판도를 넓힘으로서 역대 중화제국들이 달성하지 못했던 화이질서에 기반한 다민족국가를 실현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