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노비들의 신분 상승 욕구와 사례
- 최초 등록일
- 2011.08.04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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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실록과 민간역사 학문에서 민간역사 부분의 한 사례로
`조선시대 노비들의 신분 상승 욕구와 사례`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한 논문 형식의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조선사회에서 노비란?
2. 양반의 노비 소유 목적
3. 노비들의 인간답지 못한 생활
4. 면천의 욕구
5. 세 노비,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다
6. 신분제 붕괴와 노비 해방
본문내용
들어가며
우연히 서점에서 『조선의 시지프스들』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 표지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선조가 노비?’라는 문구가 나를 자극했고, 책장을 넘겨보게 되었다. 이 책은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면천의 꿈을 이뤄내고, 벼슬에까지 오른 인물들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추노』라는 드라마 등 일반적인 사극에서 비춰지는 까막눈의 일자무식한 노비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총명하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진취적인 삶을 살았던 노비들의 인생역전기가 담겨있던 것이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도 하에 통치되는 국가였다. 조선 후기 신분제가 붕괴되고 노비들이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조선 전기·중기의 노비들은 끊임없는 착취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노비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노비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 노비의 신분적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노비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1. 조선사회에서 노비란?
조선시대의 노비는 신분제 사회의 최하층 집단으로 흔히 종이라고 불렸다. 노비는 고대로부터 존재하였다. 노비의 발생은 전쟁포로, 채무, 형벌, 세습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습에 의한 노비가 주를 이루었고 생계유지를 위해 노비가 되는 투탁 등도 있었다. 노비는 국가나 개인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조세부담이나 국방의 의무는 없었다. 다만 소유주를 위해 각종 신역과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국가는 당대의 상황에 따라서 종부법, 종모법을 시행하였다. 대체로 국가에서는 노비가 지나치게 증가되어 조세수입이 감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부법, 종모법 등을 시행했지만 일반사대부는 사유재산인 노비를 늘리기 위해서 일천즉천의 원칙을 고수하려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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