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플랑크와 흑체 복사 이론
- 최초 등록일
- 2011.04.25
- 최종 저작일
- 19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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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막스 프랑크의 흑체복사 이론에 관한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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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막스 플랑크와 흑체 복사 이론
올해는 현대물리학의 시작을 알리게 되는 양자론이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과학 분야에서 20세기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작용양자 개념을 바탕으로 고전물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양자물리학을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1900년 12월 14일 독일 베를린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였던 플랑크는 독일 물리학회에서 흑체복사의 에너지가 플랑크 상수라는 특정한 상수와 진동수의 곱의 정수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바로 이것이 새로운 20세기 현대물리학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막스 플랑크의 젊은 시절
막스 플랑크는 1858년 4월 23일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인 킬에서 태어났다. 1874년 그는 뮌헨의 막스밀리안 김나지움을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의 석차는 상위권이었으나 한번도 수석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즉, 어학, 수학, 역사, 음악 등 모든 과목을 고루 잘했으며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나, 특출한 재능이나 적성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목사, 학자, 법률가 집안의 출신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보수적이었으며, 어느 의미에서는 대기만성형의 인물이었다. 1874/75 겨울 학기부터 플랑크는 뮌헨대학 철학부에 등록했다. 당시 플랑크의 지도교수였던 필립 폰 욜리(Philipp von Jolly)는 플랑크에게 열역학의 기본 원리들이 모두 발견되어서 이론 물리학은 이제 거의 완성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마도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을 것이니 다른 전공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플랑크는 그에게 설득되지는 않았다. 1878년부터 그는 대학을 옮겨 베를린의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와 구스타프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 18241887) 밑에서 배웠고, 1879년 6월 `열역학의 제2법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최우수 성적(summa cum laude)으로 뮌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그
참고 자료
[1] M. Planck, "Ueber eine Verbesserung der Wien`schen Spectralgleichung," Verhandlungen der Deutschen Physikalischen Gesellschaft 2 (1900), 163-180.[2] M. Planck, "Zur Theorie des Gesetzes der Energieverteilung im Normal- spectrum," Ann. d. Phys. 4 (1901), 553- 563.[3] Thomas S. Kuhn, Blackbody Theory and the Quantum Discontinuity, 1894 1912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78).[4] Armin Herman, Frhgeschichte der Quantentheorie (1899-1913) (Mosbach in Baden: Physik-Verlag, 1969).[5] John L. Heilbron, The Dilemmas of an Upright Man, Max Planck as Spokesman for German Scienc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존 L. 하 일브론(정명식, 김영식 옮김), 『막스 플랑크, 한 양심적 과학자의 딜레마』 (민음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