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치사
- 최초 등록일
- 2011.04.12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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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협조체제의 형성부터 위기까지 국제정치사와 세계외교사 책을 보고 내용을 정리하였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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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계외교사 및 국제정치사]
유럽협조체제의 형성과 위기
intro. 나폴레옹전쟁 이후의 유럽
나폴레옹전쟁에 대한 종전처리와 새로운 유럽의 정치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회의들이 열렸는데 그 이유는 일단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은 그들 사이의 유대를 계속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일부 국가들은 자기들의 영향권을 다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나라는 나폴레옹 대신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중 러시아는 1815년 비엔나회의 당시 5천 5백만이라는 인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1백만의 지상군을 무장시킬 수 있었으므로 군사적으로 절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력한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대신하여 나타난 것이 러시아이므로 연합국은 러시아를 우려하게 되었고, 러시아 문제가 비엔나회의의 중심이 되었다. 이미 1804년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는 영국에게 세계를 두 패권으로 분할하자는 제의를 하는데 즉 러시아는 대륙에서의 패권을 잡고 영국은 바다에서의 패권을 장악한다는 구상이였으나 러시아는 이미 유럽대륙에 대한 패권적인 지배의 야심을 보였고, 영국의 해상패권에 도전하기도 했다. 영국은 이에 정면으로 대립하는데 비엔나회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국의 정책은 러시아로 하여금 세계분쟁에 개입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대륙문제와 해양문제를 분리시키려는 외교적인 시도였다.
18세기의 영국과 프랑스간의 대립이 비엔나회의 이후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 이것을 고래와 코끼리의 싸움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 회의에서 다른 여러 국가들도 동의하는 바는 정복에 의한 전쟁이라는 수단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비엔나 체제의 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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