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박제가-
- 최초 등록일
- 2011.01.10
- 최종 저작일
-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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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 북학파와 성호학파으 사회개혁론의 차이.
2. 박제가의 의도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비판적이 될 수도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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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학의’는 18세기의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저작이다. 책의 제목은 ‘북쪽 [중국]으로부터 배울 것을 논함’이라는 뜻인데, 이 말은 ‘맹자’에서 ‘진량’이라는 남방 사람들이 북쪽인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문화를 배웠다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박제가를 포함하여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을 북학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박제가는 자를 차수 호를 초정이라 하였다. 그는 우부승지를 지낸 박평의 서자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시 짓기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 재주를 발휘하였고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울의 많은 지식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박제가는 젊은 날을 서자라는 신분으로 말미암아 울분을 머금고 살아야 했다. 다행히 국왕 정조의 배려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 동료들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펼 수 있었다. 그리고 네 차례 (1778년, 1790년 5월. 10월, 1801년)에나 걸친 북경 여행을 통해 중국의 발달한 문물을 자세히 목격하고 중국인 학자들과도 폭넓게 교유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상세한 북학론 혹은 이용후생론적 개혁론을 제기할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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