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계보
- 최초 등록일
- 2010.08.21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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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온조왕(재위BC18~AD28) : (온조설에 따르면)고구려 동명왕의 셋째아들이자 백제의 시조이다.
BC 18년, 위례성에 나라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백제라 하였다.
BC 16년, 말갈족이 침입해 왔으나 물리쳤고 백제는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듬해 동예와 동맹을 맺었다.
BC 11년, 말갈의 대대적인 공격이 이루어졌지만 식량이 떨어져 후퇴하다가 온조왕에게 500명이 죽었다.
BC 8년, 온조왕은 동예의 국경에 목책을 세웠는데 동예가 말갈과 함께 목책을 부수고 백제인 100명을 죽였다.
이후 백제는 동예와 동맹관계를 끊고 다시 목책을 세웠다.
BC 5년, 도읍을 위례성에서 한성으로 옮겼다.
BC 1년, 동예가 위례성을 함락시켰고 백제는 그 보복으로 동예를 공격했으나 폭설 때문에 계획이 좌절되고 말았다.
4년, 석두와 고목에 성을 쌓았고 6년에는 남쪽 경계에 목책을 쌓았으나 마한의 압력으로 철거하였다.
7년, 왕궁의 우물이 넘치고 말이 머리 하나에 몸이 두 개인 소를 낳자 온조왕은 이것을 길조라고 생각하여 합병계획에 들어갔고 9년에 마한을 멸망시켰다.
(삼국사기에는 9년에 마한을 정복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고이왕때 이르러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이 정설)
그 후 대대적으로 대두산성, 탕정성, 고사부리성을 쌓았고 원산성과 금현성을 수리했다.
2.다루왕(재위28~77) : 다루는 지배자를 뜻하는 당시 말로 몽골어의 daru가 그 어원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성격이 관대하고 후덕하며 위망이 있었다.
10년, 태자로 책봉되었고 28년, 온조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38년, 흉년이 들어 백성의 살림이 곤란하자 술의 양조를 금지시키고 지방을 친히 순시하며 빈민을 구호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 침입해온 말갈족을 격퇴하였으며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56년, 우곡성을 쌓아서 동북지방의 방비를 정비하였다.
63년, 낭자곡성(청주)까지 영토를 넓히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신라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64년, 신라의 와산성을 공격하였고 그 후 다시 신라의 구양성을 공격하였으나 격퇴 당하였다.
66년, 다시 와산성을 빼앗고 수비병 2백을 주둔시켰으나 곧 신라에게 다시 빼앗겼다.
75년, 신라의 와산성을 다시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나 이듬해 다시 빼앗기고 백제인 200명여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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