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에서 조선후기까지 건축물 비교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0.05.30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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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후기부터 조선후기의
건축물 특성과 비교를 했습니다.
목차
서론
고려후기-조선초기 비교
조선 초기 - 조선중기 비교
조선중기-조선후기 비교
결론
본문내용
서론
고려후기에서 조선후기까지의 건축물을 비교하고 알아보고자하는 생각에서 전통 건축의 문화배경을 조사하고 또 처마와 지붕의 건축양식을 알아보고 고려후기에서 조선후기까지의 문화를 비교하여 작성했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건축문화라는 것은 다양한 인간이 모여사는 하나의 사회국가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들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생활문화 중에서도 삶의 기본 요구 조건과 인간의 생활 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공간창조문화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 문화와 건축양식을 고려후기 조선초기 조선중기 조선후기로 나누워서 각각의 건축물의형식과 시대배경을 조사하여 비교하였다.
고려후기 - 조선초기 비교
※시대배경
고려후기
-1258~고려말1392
-몽고의 풍속, 문물제도가 들어와서 문화의 순수성이 저하대고 불교도 타락 부패하였다.
-원의 영향으로 대륙에서 사용하던
다포식 건축이 이입되어 사용 되었다.(예)황주 심원사 보광전, 경천사지 10층 석탑
-적조미와 정저미가 구체적으로 형성 되게 된것은 고려 후기시대부터다.
조선초기
-태조1392~임진왜란1592
-역대 왕들의 억불정책으로 말미암아 종래의 강성하였던 불교예술은 점차 쇠퇴 되어갔다.
-고려문화를 계승하고 유교의 지도이념으로 하여 명의 문화 영향을 받아서 국운이 융성함에 따라 경제가 향상되고 많은 문화발전을 초래하였다.
-다포식 건축형식과 주심포식, 절충식이 겸용되었다.
(예)서울 남대문(1398), 강진무위사 극락전(1476), 개심사 대웅전(1484)
※건축물 형식
고려후기
‣다포식
-원에서 전체적으로 사용되던 다포식이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창방과 주상단에 평방을 얹어놓고 그 위에 주심포작과 주간포작을 배치하고, 주두와 소로의 굽단면이 직선이 되고, 굽받침이 없는 것이다.
-하양과 첨자가 동일재로 만들어지고, 제공첨차의 수가 많아지고, 내부천장은 보통 우물천장을 만들어 주요 기구를 은폐하게 된다
조선초기
‣다포식
-일반적으로 원주가 사용되었다.
-주심포식 보다는 덜 현저한 배흘림을 가졌다.
-중기 이후부터는 민흘림을 가진 기둥 또는 원통형의 기둥들이 사용되었다.
-주두와 소로의 굽은 곡면이 아니고 사면으로 형성되었다.
참고 자료
-서울의 궁궐 건축
-건축사 수험서(석영두)
-한국****(신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