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9.12.04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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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역사가로서 페르낭 브로델의 생애와 사상을 분석
목차
브로델의 생애
브로델의 사상
- 3단구조론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나타난 3분 구조
브로델을 비판하는 자들
본문내용
전후 마르크 블로크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아날 2세대에 속하는 페르낭 브로델이다. 브로델은 단순히 블로크의 빈자리를 메꾸는 수준이 아니라 아날의 위명을 전 세계에 떨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역사학의 교황’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받은 위대한 사학자였다. 장기지속적인 역사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은 그에게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꼭 한번 짚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브로델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사학자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고자 한다.
브로델의 생애
브로델은 1902년 8월 24일 프랑스 뫼스 데파르트망의 뤼메빌 앙 오르느와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아버지와 떨어져 할머니댁에서 자라났다. 성장하여 파리의 볼테르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의 브로델은 비달학파의 인문지리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21세에 역사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1923년부터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고등학교와 콩스탄틴 고등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쳤다. 1932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34년부터 1년간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1935년에 브라질로 건너갔다. 37년까지 상파울루 대학에서 문명사를 가르치던 그는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에 뤼시앵 페브르를 만나 그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프랑스로 돌아온 브로델은 그 해에 고등학문연구원에 들어가 1939년 전쟁이 발발해 입대할 때까지 공부했다. 전쟁에 참가한 브로델은 40년 포로가 되어 45년 종전까지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이 5년간의 수감기간 동안 브로델은 마인츠 포로수용소에 설립된 대학의 학장으로 지내면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스스로도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이후 ‘지중해’)의 초안을 작성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