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
- 최초 등록일
- 2009.05.18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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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Ⅰ. 서론
ⅰ. 프라이부르크란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ⅱ. 생태도시로 프라이부르크를 선택한 이유
Ⅱ. 본론
ⅰ. 프라이부르크의 생태도시 계획
1. 자전거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교통체계
2. ‘태양도시’ 건설을 향한 시도
3. ‘쓰레기 제로’에의 도전
4. 환경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경제
5. 숲과 하천이 어우러진 도시 만들기
Ⅲ. 결론
ⅰ. 프라이부르크가 다른 도시에 끼친 영향성
-가마쿠라 속의 프라이부르크 시스템
ⅱ. 프라이부르크에 대한 나의 생각
Ⅳ. 참고문헌
목차
Ⅰ. 서론
ⅰ. 프라이부르크란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ⅱ. 생태도시로 프라이부르크를 선택한 이유
Ⅱ. 본론
ⅰ. 프라이부르크의 생태도시 계획
1. 자전거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교통체계
2. ‘태양도시’ 건설을 향한 시도
3. ‘쓰레기 제로’에의 도전
4. 환경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경제
5. 숲과 하천이 어우러진 도시 만들기
Ⅲ. 결론
ⅰ. 프라이부르크가 다른 도시에 끼친 영향성
-가마쿠라 속의 프라이부르크 시스템
ⅱ. 프라이부르크에 대한 나의 생각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ⅰ. 프라이부르크란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면적 153.06㎢, 인구 20만 2500명(2001)이다. 라인강(江)이 가까이 흐르며 슈바르츠발트의 서쪽 기슭에 해당한다. 정식 명칭은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Freiburg im Breisgau)이다.
1120년 건설되어 차링겐 공작으로부터 시로서의 특권을 인정받았다. 프라이부르크라는 이름은 당시 자유로운 교역이 이루어진 데서 유래한다. 1218년 우라흐 백작(후에 프라이부르크 백작이 되었다)의 영지를 거쳐, 1368년 프라이부르크를 포함한 브라이스가우의 전 지역이 합스부르크왕가의 영지가 되었다. 30년 전쟁(1618∼1648) 때는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군대가 이곳에서 튀렌과 콩데가의 루이 2세(Louis II)가 거느리는 프랑스군에 패배하였다(1644). 프랑스는 1677~1697년, 오스트리아계승전쟁(1740∼1748) 동안에도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1805년 바덴에 귀속되었다.
관광 및 각종 회의장으로 유명하며, 와인과 목재 거래의 중심지이다. 또한 1457년 알브레히트 6세(Albrecht VI)에 의하여 설립된 알브레히트루트비히대학(The Albrecht Ludwig University)과 다수의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21년 대교구가 설치되었고 높이 116m에 이르는 탑이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도 볼 만하다.
그 밖의 건축물로는 13세기에 건립된 프란시스코파(派)의 장크트마르틴성당(Church of St. Martin), 16세기의 시청사, 1685∼수이트파 성당, 2000년 현재 주립음악대학으로 사용되는18세기의 벤칭거하우스(Wenzingerhaus) 등이 있다.
ⅱ. 생태도시로 프라이부르크를 선택한 이유
한창 인터넷으로 펜팔이 유행하던 때에 독일에 사는 한 여자아이와 짧은 기간 펜팔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살던 동네가 프라이부르크였는데 자신의 동네가 얼마나 환경이 깨끗한지 살기 좋은지 가끔씩 자랑하곤 했다.
참고 자료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김해창 지음)
-생태도시의 선도 모델 프라이부르크 (탐방) <Freiburg as a Leading Model of Ecological City> (김성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