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와 조선의 자기
- 최초 등록일
- 2001.10.29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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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저의 역작입니다 사학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내용입니다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高麗靑瓷
a. 高麗靑瓷의 起源
b. 高麗靑瓷의 特色
c. 高麗靑瓷의 種類와 變化
2. 粉靑沙器
a. 粉靑沙器의 起源
b. 粉靑沙器의 特色
c. 粉靑沙器의 種類
3. 朝鮮 白瓷
a. 朝鮮 白瓷의 起源과 特徵
b. 朝鮮 白瓷의 時代區分
c. 朝鮮 白瓷의 時代에 따른 樣式의 變化
4. 沈壽官과 사쓰마도자에 대하여
Ⅲ. 結論
본문내용
3.朝鮮 白瓷
a. 朝鮮白瓷의 기원과 특징
규사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딘 경질이 아닌 연질白瓷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靑瓷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이다. 이 때의 白瓷는 기벽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고 유약에도 미세한 병력이 있으며 1300℃ 정도의 고화도로 변조하지 않아서 무른 편이며, 이후 11세기에는 초기白瓷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白瓷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白瓷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덕진에서 원대 청白瓷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白瓷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국로써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高麗말의 白瓷가마는 이후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朝鮮 초 白瓷 가마와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저선 초기에 설치되어 1883년 민영화되기 전까지 왕실용 자기로 번조하던 사옹원의 분원을 경기도 광주 지역에 두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지방가마가 확산되었다. 경질白瓷의 태토는 순백의 고령토이며 유약은 거의 병렬이 없고 다소 푸르름을 머금었으며 약간 두껍게 시유되어 은은하다. 태토와 유약은 완전히 밀착되었으며 가는 모래받침으로 굽을 받치고 갑발에 넣어 번조하였기 때문에 갑번白瓷라고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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