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1.10.06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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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태후의 권력 장악
2. 서태후의 정치와 청나라에 준 영향
3. 서태후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1. 서태후의 권력장악
청나라에는 3년마다 팔기(八旗)의 여자들 가운데 수녀(秀女)를 뽑아 입궁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청 문종 함풍황제(文宗咸豊皇帝) 때 만주 팔기 가운데 양황기인(黃旗人) 혜정의 딸 엽혁나랍씨(葉赫那拉氏)가 수녀로 뽑혀 궁으로 들어갔다. 엽혁나랍씨의 집안은 대대로 관료를 지내 비교적 풍족하게 생활하여 그녀는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고, 총명하여 만주어와 한어에 정통하고 「시경」「서경」등의 경서와 악기, 서법,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당의 측천무후를 흠모하여 그녀와 같이 대권을 쥐고 국가를 다스려보고 싶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었다.
입궁하고 몇 달이 지나 그녀는 함풍황제의 눈에 띄었고 총애를 받게 되었다. 함풍 2년(1852), 엽혁나랍씨는 난귀인(蘭貴人)으로 봉해졌고, 함풍 4년에는 의빈(懿嬪), 함풍 6년에는 함풍황제에게 유일한 아들인 재순(載淳)을 생산함으로써 의비(懿妃)로 봉해졌으며, 그 이듬해에는 의귀비(懿貴妃)로 격상되었다.
황제의 은총을 한몸에 받게 된 의귀비는 여자는 정사에 간여할 수 없다는 청나라의 규칙을 의식하며 용의주도하게 조금씩 정무를 배웠다. 황제는 의귀비가 뛰어난 정치감각이 있음을 발견하고 차츰 일이 생기면 그녀의 의견을 물어 시행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의귀비는 조정과 나라의 안팎사정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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