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개국전설
- 최초 등록일
- 2001.05.04
- 최종 저작일
- 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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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해설 : 고구려(高句麗)의 개국전설(開國傳說)
2. 동명왕신화의 부계중심 3대기 구조
3. 동명왕신화에서 유화부인이 맡은 역할
4. 동명왕신화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
5. 동명왕 신화
본문내용
고구려의 개국전설은 현재 네 가지가 전한다. 첫째는 여기 자료에서 소개하는 [동명왕편]의 주(註)로 전하는 {구삼국사}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유사} 고구려조의 설이며, 둘째는 [광개토대왕비] 및 {위서(魏書)} 고구려전의 설이고, 셋째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설, 넷째는 {삼국유사} 북부여조의 설이다. 각 설은 골격에선 크게 다르지 않으나 구체적인 내용 전개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즉 둘째의 설에서는 해모수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햇빛을 받아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은 것으로만 되어 있으며, 그녀를 방안에 유폐한 이가 동부여의 왕이 아닌 (북)부여의 왕으로 되어 있다. 셋째 설에는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하여 졸본부여(卒本夫餘)로 온 후 졸본 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고, 왕이 죽은 후 그 위(位)를 계승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넷째 설에서는 북부여의 왕을 천제(天帝)인 해모수라 하고 그 아들을 부루(扶婁)라고 한 뒤, 해부루가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도읍을 동부여로 옮겨 가고 동명제(東明帝)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도읍을 졸본주(卒本州)에 정하여 졸본부여가 되었다고 하였다.
고구려의 개국전설인 동명왕신화에서 도입부를 이루는 해모수와 하백녀의 결합은 단군신화의 중간부 내용인 환웅과 웅녀의 결합과 매우 유사한데, 이러한 결합 양식은 백제나 신라의 개국전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요소이다. 고대국가 형성단계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후한서} 부여열전에 동명왕신화가 부여의 건국설화로 소개되어 나타나는 것은 이같은 구성이 동북아시아 초기 국가들의 건국설화를 형성한 공통적인 요소였음을 말해 준다.
동명왕신화에는 갈등, 고난과 극복, 주술성(呪術性), 문화성(文化性) 등 신화가 갖는 극적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먼저 갈등은 백제의 건국설화에서도 보이는 형제간의 갈등 형태이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금와왕이 거둠으로써 주몽과 금와왕의 태자들 간에는 형제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몽은 이 갈등을 피하여 남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백제의 건국설화에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적자(嫡子)에 의한 왕위 승계의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정치단계의 사정을 반영한 내용일 것이다.
참고 자료
박두포(1968), "민족영웅 동명왕 설화고", <국문학연구>1, 효성여대.
서대석(1980), <한국 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신경숙(1984), <동명왕편과 제석본풀이의 대비연구>, 고려대 석사논문.
유명종(1972), "부여, 고구려의 신화 전설", <철학연구>14, 한국철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