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던지는 다섯가지 질문사람들은 왜 불륜을 꿈꿀까?"세상에는 영웅과 악당만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정열을 지닌 남녀로 이루어져 있다. 무지한 자는 그들을 비난하지만 현명한 자는 가엾이 여긴다" -찰리 채플린많은 사람들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랑, '정사'에서의 이미숙과 이정재의 사랑, 산지기 멜로스와 채털리 부인의 사랑, '내 생애 하루뿐인 특별한 날'에서의 규와 미흔의 사랑에 열광한다. 이들 사랑의 공통점은 그것이 금지된 것, 인정받을 수 없는 것, 아슬아슬하고도 운명적인 사랑이었다는 점, 쉽게 말해 '불륜'이라는 점이다. 요즘에 인기를 얻는 책이나 영화들을 보면 언제나 맞딱뜨리게 되는 문제가 바로 불륜인 것 같다. 이는 그만큼 독자나 관객이 금지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느끼게 되는 기쁨과 열정, 죄책감과 두려움에 크나큰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금지된 사랑,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작품을 접한 뒤 매번 '나도 한번쯤 저런 사랑을 해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많다.'안나 까레리나'를 논하면서 이 영화는 도덕적인 측면, 예술적인 측면, 인간 관계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불륜'이라는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많은 비평 서적에서 똘스또이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사랑은 이 작품 속에서 레빈의 인생을 통해 드러나며 그것은 자발적인 자기 희생과 기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읽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사랑이 그렇게 도덕적이고 반듯한 것이 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해 항상 애틋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랑의 결실속에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보람이 있지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져서는 안될 사랑 속에는 더욱 큰 아름다움과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요즘 세상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 목숨을 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아무런 계산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신을 맡겨버리는 행동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평가받기 쉬울 것이다. 그런만큼 불륜은 꿈도 로맨스도 없이 단조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동경과 매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안나 까레리나의 무모하고도 모험적인 사랑 이야기에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같다.브론스키와 안나는 정말 사랑했을까?"할 이야기가 있어요. 한가지만...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 오는 거예요.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중에서-안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였고 나이 많은 정치가의 아내로서 아들 세료자를 사랑하고 남편을 존경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는 오블로스키 부부를 화해시키러 가는 길에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게 되고 솟아오르는 행복과 흥분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평판과 안락함을 버린 채 정열을 이기지 못하고 브론스키를 따르게 된다. 하지만 안나는 점점 그의 사랑이 식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의심과 혼란이 가중되면서 절망에 빠진 그녀는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안나 까레리나를 비롯한 불륜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 결말이 매우 비극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불륜이 결국 진실한 사랑이 아니며 인생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불륜은 사랑이 아닌가? 나는 여기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진짜'사랑일 것이다.그들은 첫눈에 서로 친밀감을 느꼈고 자기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있었다. 비록 나중에 그 마음이 변해간다 할지라도 둘이 만나서 함께 한 짧은 시간동안 두 남녀는 정열을 다했고 그 사랑에는 아무런 거짓이 없었을 것이다. 안나는 어떤 계산도 없이 한 사람 자체 만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안나의 행동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가능한 선택이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사랑은 사회에 유익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다.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동질감, 친근감, 애정을 느꼈을 테고 나는 이러한 감정들이 진실한 사랑에 있어 충분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한 사람이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몇 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사랑이 부럽다.안나는 죽어 마땅했을까?"여자란 자기의 사랑을 하던가, 혹은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살아가던가의 어느 쪽이란다."-채털리 부인의 사랑 중에서-안나는 결국 죽음을 맞는다. 폐인이 된 그녀는 브론스키와 눈길을 주고받았던 역으로 찾아가 들어오는 화물차를 보고 철로 위에 몸을 던진다. 여주인공의 자살이란 작품의 결말은 작가 똘스또이가 안나에게 가한 사회적 단죄이자 제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분명 그녀는 신이 맺어준 결혼을 깨려고 했고, 불륜을 위해 자식을 버리기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안나는 죽어야만 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규범이나 제도를 벗어난 사랑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고, 죽음까지도 무릅쓸 정도로 위험한 사랑을 했다고 해서 정말 죽음을 가져다주는 똘스또이의 결말에 화가난다.불륜이란 어디까지나 사회적 가치, 척도를 반영한 용어이지 개인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사랑의 한가지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 사랑은 이렇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륜 역시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오고 개인의 인생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로맨스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개인의 행복보다 결혼이라는 관습과 규범이 더욱 추앙받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받지 못한다고, 축복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안나의 사랑을 비난하고, 그녀의 불행과 죽음은 당연한 결말이라고 보는 시각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결혼이란?"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결국 불륜밖에 되지 않는군요."-실락원 중에서-불륜이라는 것은 결혼이란 제도가 금기시하는 가장 강력한 위반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안나 까레리나에서 두 남녀는 아무래도 너무 늦게 만났다. 안나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 까레닌은 관료적인 사람으로 허식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까레닌과 살아가는 안나의 인생은 건조했고 그녀는 그러한 생활에 지쳐있었다.남녀가 결혼을 하면 여자는 아내, 엄마라는 역할을 갖게 되고 남자는 남편, 아버지, 가장 노릇에 얽매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한 후에 인생의 덧없음에 실망하고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고 싶어하지만, 일단 결혼이란 속박을 풀고 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람은 결혼이란 인간이 완전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는 전제로 만든 이상적인 틀에 불과하며 애초에 불완전하기만한 인간이 완전한 사랑을 꿈꿨던 일부터가 잘못된 것이였다고 말한다.안나까레리나를 보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왜 그들이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라는 점이었다. 진정 사랑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알게 되는 나이에 안나의 선택은 이미 끝나있었다. 그런 그녀의 현실이 슬펐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뒤늦은 만남 또한 운명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보았다. 뭐 운명이란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까...
Ⅰ.들어가며우리나라에서 문학에 대한 연구는 국문학을 제쳐두고, 외국 문학의 연구는 영문학이나 불문학 쪽으로 많이 치우쳐진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접한 문학들은 주로 영문학들이였으며, 스페인어권의 문학이나 중남미문학은 많이 생소하다. 스페인어 자체도 어색하고, 인식하기 어려웠으며 아즈텍 문명이나 고대 멕시코 신들과 같은 것조차 너무 생소하여서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의 시 자체가 너무 난해하게 느껴졌다.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에서 나타나는 아즈텍적 우주관과 시간관, 아즈텍의 이중적 철학성 역시 여태 서구주의적인 사고 방식에 물들여진 나한테는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왔으며 이런 새로한 개념은 이 시를 난해하게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파스의 『태양의 돌』는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 사상을 담아내어 이 시가 더욱더 중남미적 인 문학으로 느껴졌다. 옥타비오 파스는 이 시에서 아즈텍의 고유한 사상적 특색을 멕시코만의 고유한 개별적인 특성을 담아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많은 사람, 많은 사회에 적용될 수 있게끔 보편화시켰다. 멕시코의 대표적 시인 옥타비오 파스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의 시 『태양의 돌』에 대해서 공부함으로서 중남미 문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Ⅱ. 본문1. 옥타비오 파스199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1914년 3월 31일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세대 전에 멕시코에 정착한 끄리오요 가문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출신 가문의 딸이었다. 파스의 할아버지는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탁월한 지식인이었던 할아버지는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갈도르, 로뻬 데 베가, 깔데론 데 라 바르까, 알라르꼰, 공고라 등의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또한 개화된 숙모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 문화와 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옥타비오 파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지적인 유산과 사회적인 열정으로 청년시절부터 멕시코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고 학생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이러한 그의 사회 참여적이고 정치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시에 대한 열정도 지니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전 세대 시인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서 그 당시의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까를로스 빠이세르, 호세 고로스띠사, 사무엘 라모스 등이 그들이었으며 파스는 헤라르도 디에고가 편집한 시선집을 통해서 스페인 시를 알게 되기도 하였고, 호르헤 꾸에스타의 시선집을 통해서는 멕시코 시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이 당시에 그는 잡지 『난간』을 창간하고 편집하였는데 이 잡지를 통하여 문학적 전위주의를 소개하였고 파스는 이 잡지를 통해 예술이 갖는 역사적이고 중언적인 가치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 잡지가 폐간되고 『멕시코 문학일지』라는 잡지가 창간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순수시 를 뛰어넘는 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하였다.1927년에는 그는 다니던 멕시코 국립대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함께 유까딴 지방에 노동자와 농민의 자녀들을 위해서 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그는 농촌의 농민들의 삶과 도시의 근대적 삶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았으며 『돌과 꽃사이에서』라는 그의 시에서 그러한 대조성을 나타낸다. 그는 시 속에서 원주민 농민들의 수수한 삶의 모습이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본주의의 추상적 세계로 대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들과 꽃사이에서, 대지의 황량함과 선인장에 피는 경이로는 꽃 사이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인간이었다.옥타비오 파스는 그의 시에서 정치적인 해석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심오하고 보편적인 진리, 끝없는 생명력이었다. 또한 그의 첫 번째 시집 『인간의 뿌리』와 두 번째 시집인 『야생의 달』에서 사랑과 에로티즘을 중심주제로 잡았으며 이후에도 계속 나타나는 주제였다. 『태양의 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에로티즘과 사랑에 대한 주제가 드러난다.1945년 파스는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외무부에서 일하게 되고 또 파리 주재 멕시코 대사관의 하급 영사로 임명되어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파리에서 파스는 멕시코에서 만났던 벵자맹 페레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서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파스에게 초현실주의는 시의 한 분류나 시를 쓰는 기법이 아니었다. 그에게 초현실주의는 우리에게 시적 열정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었으며 예술과 에로티즘과 도덕이 갖는 본래의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었다.1952년에 옥타비오 파스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서 외교관직을 수행한다. 그는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외국의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국내의 작가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하였다. 그는 『활과 리라』에서 시는 역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가 곧 역사라는 사실과 자기 자신을 비움으로써 자신을 채우는 역설적 경험이 바로 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시라는 것은 발명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둘러싼 타자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자는 자아와 한 몸을 이루며 그 몸이 바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는 비밀스럽고 스스로 그러한 현실을 발견하기 위한 탐색의 결과이며 인간, 시간, 공간 등은 모두 관계 속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파스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통해서 시와 혁명, 시와 사회의 문제를 재검증하려고 하였다. 그에게 시와 혁명의 임무는 현실너머의 초월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생성하는 현실의 인과를 표현하는 것이다.현실의 의미에 대해서 탐색한다는 파스의 비판 작업은 위선과 억압이 가득한 근대성의 반성으로 이어졌으며 『태양의 돌』에서도 파스의 근대화적인 사회에 대한 고찰과 비판이 잘 드러난다.옥타비오 파스는 독자들에게 타자성을 지향하라고 권고했고 스스로도 실천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적 구원을 거부하고 기독교신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을 자연성으로 대체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장하는 고독 과 합치 의 시학은 모더니티가 제시하는 진보 개념 속에 내포된 한계점을 부각시키고 그 대체 안을 마련해보려는 의도에서 형성된 것이다. 파스는 자아와 타자간의 문제를 인간의 이원성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양자간의 합치 를 통해 이루려고 한다. 그는 타자를 신과 개념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전환시키고 인간 본질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 스스로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찾아야 하며 이러한 시학은 시가 인간과 세상을 변환시킬 수 있다는 논지를 완성한다.이러한 그의 시학은 멕시코, 중남미 시의 큰 줄기로서 존재하며 중남미 문학의 특색을 담아낸다 하겠다.2.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에 드러난 이중성아즈텍 달력이라고 알려진 중남미의 예술품인 태양의 돌은 옥타비오 파스에 의해서 다시 시 라는 예술로서 태어나게 된다. 파스는 『태양의 돌』이라는 시에서 아즈텍의 독특한 우주관과 시간관, 이중성의 철학을 담아내며 이것을 보편화시키고 세계화시켰다. 파스는 아즈텍의 이중성의 철학은 아즈텍 문명에 한정된 사상이 아닌 우리 인류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또 고찰해 봐야 하는 사상으로 끌어낸다.이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즈텍의 이중성의 철학이라는 것을 통해서 위선과 억압이 가득한 근대성에 대해서 비판하며, 타자와 일치된 나, 통합된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해준다. 『태양의 돌』에 나타난 이중성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이중성의 철학을 통해 삭막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하도록 하자.금성은 새벽별과 저녁별로 하루에 두 번 하늘에 나타난다. 이 이중성은 모든 문명의 인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고대 멕시코인들은 금성에게서 우주의 근원적인 이중성 의 현시를 보았던 것이다. 초저녁에 사라졌다가 새벽에 다시 뜨는 샛별은 달, 습기, 물, 식물, 자연의 죽음과 부활의 이미지와 연관되어서 고대 지중해변의 민족들에게도 이중성 의 힘을 상징했다. 샛별은 곧 이쉬타르 여신, 원추형 돌, 아직 다듬지 않은 돌(이것은 도교 의 '깍지 않은 통나무'를 연상시킨다), 아프로디테, 키케로의 사중(四重) 금성, 파시니아의 이중의 여왕 등과 연관이 있다. {) (주:Octavio Paz, Obra po tica (1935-1988) (Barcelona: Seix Barral, 1990), pp.776-777. 김홍근 편 역 옥타비오 파스: 현재를 찾아서. 범양사 1992. 82-83 쪽에 나오는 번역)『태양의 돌』은 형식에서부터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파스가 초판의 안내주석에서 밝히듯이 584행의 시구로 되어있는 이 시는 584일의 공전주기를 가지는 금성과 연관이 된다. 이 금성 자체에도 새벽별과 저녁별이라는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하늘로 도망가서 금성이 된 께쌀꼬아뜰이라는 신의 이름에도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584일의 금성의 공전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처음 6행과 마지막의 6행에서의 반복구조를 취함으로서 처음과 끝의 구분이 없게 하는 원형적 시간관, 주기적 회전을 나타내며 이 시의 처음과 끝의 6행 안에 또한 처음과 끝이라는 서로 상반된 개념이 포함됨으로서 이것 또한 이중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쟈마찐의 「우리들」이란 작품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과 함께 20세기에 나온 3대 디스토피아 문학 으로 꼽힌다. 1920년대 작품인 「우리들」은 시기적으로 1930년대에 나온 「멋진 신세계」와 19040년대에 출판된 「1984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쟈마찐 자신이 살고 있던 당시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불안과 혐오가 「우리들」에서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으로 풍자되었다.「우리들」의 주인공 D-503이 살고 있는 세상은 2 2=4'의 공식이 지배하는 거대한 유클릿 공장으로 표현되는 문명의 상징물인 단일제국 이다. 이 단일제국은 자연력을 완전히 푸른벽으로 차단되어져 자연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제각기 투명한 유리로 된 건물 안에서 살고 있다. 단일제국에서는 은혜로운 분 이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하며 통치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시간 율법표 를 받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짜여진대로 생활을 해나갈 뿐이다. 단일제국 밖의 자연 즉, 문명의 상징물과 대립되는 자연의 상징물인 벽 너머의 세상은 눈부신 태양과 부드러운 잔디, 푸르른 나무와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로 가득 차 있어서 단일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서정적 풍경이 펼쳐진다. 벽 너머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온통 짧고 빛나는 털로 덮여 있으며, 여자들은 크고 단단한 기하학적 형상의 가슴을 지닌 야만인들이지만 그들은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불타는 붉은 피를 지닌 벽 너머의 사람들을 향한 자먀찐의 동경은, 비록 동물적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어도 어떠한 억압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노래를 부르며, 섹스를 즐기는 프롤에게 향하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의 동경과 다름 아니다.단일제국 안에서는 100%의 행복은 100%의 非자유와 일맥 상통한다. 수학적으로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토피아 사회인 단일제국은 개인을 초인간으로 만들었지만 사회 속의 개인은 노예로 떨어졌다. 자먀찐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단일제국의 유클릿적인 논리로 유머러스하게 설명하고 있다.이 소설을 읽으면 행복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자유스러움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어 틀에 꽉 짜여져 아무 근심 걱정 없고 범죄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100% 자유로움 속에서 인간은 무한한 행복을 느낄까? 「우리들」의 주인공 D-503은 자신과 단일제국 안의 모든 구성원은 매우 흡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100%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일이며 시간 율법표 에 맞춰서 살아가는 자신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D-530의 시각에서 봤을 때 고대인 즉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형편 없고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우리들의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면 그의 사고 방식은 우습기 짝이 없다. 쟈마찐는 「우리들」에서 D-503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면서 행복과 자유의 관계를 더 확고하게 설명하려 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완벽하게 자유스로울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꼭 자유의 문제에만 치부될 일은 아니며 그것은 자유라는 전제아래에서 여러 가지 조건이 결합될 때 생기는 것이다.이 소설의 단일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은 한결같이 푸르스름한 제복을 입고 가슴에는 국민번호가 새겨진 황금빛 번호판을 달고 있으며, 언제나 음악제작소 의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단일제국 행진곡 에 박자를 맞추어 네 명씩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지어 열광적으로 걸어간다. 200년 전쟁 을 통한 농촌과 도시(자연과 문명)의 대결은 빵을 사라지게 하고 석유식품을 새로이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 하나인 배고픔, 즉 기아 를 정복했다.기아 를 정복한 단일제국은 또 다른 세계의 지배자, 즉 사랑 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여 마침내 그마저도 정복하고 만다. 단일제국에 의해 정복된 사랑은 조직화되고 수학화되었다. 마침내 모든 번호들에게는 다른 어떤 번호에 대해서라도 성적 산물로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는 역사적인 성법전 이 선포된다. 성규제국의 실험실에서는 모든 번호를 주도면밀하게 검진하고 혈액 내 성호르몬의 내용물을 정확하게 규정한 뒤 그것에 준거하여 각자에게 알맞은 섹스 일정표 를 산출해 준다. 그리고 작가는 정해진 날에 이러저러한 번호를 이용하고 싶다고 신고하면 적절한 원부가 붙은 장미빛 감찰을 받게 된다. 질투의 동기란 아무것도 없으며 고대인들에게 있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무수한 비극의 원천이 되었던 섹스가 여기에서는 조직체의 조화롭고 유용한 기능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수학화, 조직화되어 모든 번호들의 동등한 행복이 실현된 사회는 인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노예화와 파괴가 가능한 사회인 것이다.그리고 단일제국에서는 아이도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길러진다. 흡연이나 음주와 같은 타락한 행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러한 단일제국만의 제도는 어겨서도 안되고 만일 어길 시에는 처형기계에 가차없이 처형된다. 한마디로 자유는 미개한 상태이며 용납될 수 없으며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단일제국은 이성의 압제 아래 모든 것이 평등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시간율법표 를 준수하며 보호요원의 감시 아래 은혜로운 분 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간다.이러한 사회 속에서 인간은 단지 사회를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되었으며 모두 기계적으로 일하는 로봇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사고 방식은 무조건 이성에만 의존하며 감정이라는 것은 일체 있을 수가 없다. 단일제국에서는 상상, 감성을 제거하는 외과 수술을 완성하기 이르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때에는 수술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다시 행복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로 수학적인 계산과 이성만으로 느낄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에는 무언가 가슴 벅찬 감정을 느끼고 한없이 기쁘고 충족된 기분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감정 과 연관된 것이다.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 감정을 없애려는 노력을 기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행복도 동시에 없어지는 것이다. 단일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제 3자로서 바라보지 못하고 단일제국의 은혜로운 분 과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입된 행복이라는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그들은 행복의 진정한 가치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은 I-330을 만나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기묘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D-503을 처음 만난 날부터 그의 손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의 손에는 털이 많이 나 있어서 주인공 스스로 야만적인 모습이라 생각해 혐오하고 있다. 이것은 이성과는 상반된 상징성으로 주인공에게도 동물적인, 감성적이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것에 암시로 작가가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주인공은 I-330을 계속해서 만나게 되고 그녀를 따라 고대관에 가기도 하고 금기시 되어 있는 알코올을 섭취하기도 하며 결국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은 인정하지 못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며 자신의 내부 깊이에 억눌려져 있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무조건 이 감정을 부정하며 방황하게 된다. 2 2=4 라는 주인공의 사고 속에 √-1 이라는 개념이 개입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이성과 감성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이성이며 또 동물적인 것은 감성이라는 표현이 있긴 하나 인간의 이성적인 것만 인정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 일 것이다. 동물적인 감정이나 생리적인 현상도 모두 인간의 것으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며 그 두 가지 것을 가치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고 지나친 감정을 이성으로 억제하며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잘 생활해나가며, 때때로 어떠한 감정이든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또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가치관과 이성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유토피아에 관해 생각을 하게끔 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특징은 현실에 대한 즉각적인 대안을 내기보다는 이상적인 세계를 제시하며, 그 이상이 미래에서 실현될 가능성에 대하여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근거하는 유토피아의 기반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이러한 유토피아 소설들은 인간을 이성적일 때 가장 이상적이다는 사고에서만 이해되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시점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비판이 대두된다.쟈마찐은 「우리들」을 통해 지나친 이성적인 사람들이 사는 디스토피아의 사상을 제시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감성적인 인간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사회가 없다는 것을 제시하며 그의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의 모습을 통해 유토피아에 대한 독자들의 생각을 이끄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유토피아를 가장한 단일제국이 얼마나 디스토피아적인가를, 그리고 왜 그런가를 보여준다. 단일제국은 이성의 지배하에 모든 인간생활의 특수성을 종속시킨다. 이성은 전능하다고 믿어지는 은혜로운 분 에게서 비롯되며 제국은 의식주의 걱정을 떠난 유토피아적 삶을 보장한다.단일제국에서 이성은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행복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번호들은 일종의 환각상태에서 스스로를 이성적이며 따라서 행복한 존재라고 느낀다. 단일제국에서 행복과 이성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단일제국에서 행복은 이성에서 비롯되며 이성을 대표하는 구구단의 정확함은 신성화된 의미를 갖는다.고대의 신은 고대의 인간, 즉 실수를 범하는 인간을 창조했다. 그것이 신의 실수였 다. 구구단은 고대의 신보다 더 현명하고 더 절대적이다. 그것은 절대로-알겠는가, 절 대로-실수하지 않는다. (12장)
들어가며...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한일 두 나라는 오랜 세월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한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잠시 소홀히 함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일본의 강요와 핍박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른 우리 민족의 저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지만 일본이란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번 드는 것이 사실이다.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이번에 과제로 제시된 여러 주제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의 상징 천황제이다. 35년 간 일제는 천황의 이름으로 한국을 점령하였고 따라서 20세기 한일 관계의 대부분이 천황제에 의해 규정되었던 만큼 천황제는 일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20세기 과거의 청산 이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천황제가 가지는 의미, 그 속에 내재된 문제점을 살펴보고 과연 21세기에도 천황제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야 할지를 살펴보겠다. 천황제 가 처한 국제적 상황군주제의 구조에는 대단히 멍청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정보를 얻을 실마리는 충분히 주지 않으면서 최고의 판단이 필요할 때에는 그에게 판단을 내릴 권한을 부여한다.-토마스페인 中20세기 세계의 역사는 군주의 권한과 권위가 축소되면서 전체적으로 군주제가 폐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은 청 제국을 멸망시켜 은.주(殷周) 시대 이래의 기나긴 군주제를 끝장내며 중화민국을 성립시켰다. 또한 제 1차 대전중인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유럽의 왕조가 멸망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으며 1918년 독일혁명으로 독일 또한 공화국이 되었다. 이즈음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도 명문 왕가인 함스부르크가가 멸망하였다. 현재의 국가들을 분류해보면 세계 168개국 48억명 중 군주국은 29개국 뿐이며 인구는 3억8천만명, 약 8%에 불과하다.1){국명인구국명인구국명인구국명인구유럽영국5612유럽리히텐슈타인3아시아네팔1662아시아바레인41스페인3860모나코3말레지아1555카타르31네덜란드1448바티칸0.1사우디아라비아1154부르네이22벨기에990아프리카모로코2194요르단351오세아니아서사모아16스웨덴835레소트152쿠웨이트171통가9덴마크511스와질랜드64부탄141노르웨이415아시아일본12075아랍수장연방132룩셈부르크36타이5130오만124일본이 근대 천황제 국가를 만들어 낼 때 모범으로 삼았던 세계의 대표적 군주제들이 군주제는 패전을 이겨낼 수 없다 라는 법칙에 따라 연달아 붕괴해 버린 현재의 상황에서 이제 일본의 천황제만이 거의 유일한 예외가 되었다. 또한 일본의 잔존 군주제(상징 천황제)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천황제에 대한 보도 내용은 일본에서 먼 나라일 수록 호의적이고 정작 일본에 가까워질수록 엄격해진다.2) 전쟁 후 상징 천황제가 일본에 뿌리 내렸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천황과 일본 국민 모두가 전쟁 책임 문제를 불문에 부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중국, 동남 아시아 등 인접 국가에서는 천황제로 대표되는 일본의 현 국가체제에 대해 공통적인 경계와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천황제와 영국 군주제의 비교영국의 군주제는 한 번 가열이 된 티푸스 균이고 일본의 천황제는 아직 살아있는 티푸스 균이다-라티모어천황제 를 긍정적으로 논의함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예가 영국의 군주제이다. 영국은 가장 안정된 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받으며 황실 제도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선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이미 1649년에 찰스 1세를 사형에 처함으로써 군주제의 가축성을 탈피한 바 있고 이 점을 간과한 채 영국 왕실의 안정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영국민은 국왕 찰스 1세의 목을 자르고 1689년 권리장전, 1701년 왕위 계승법 제정 등의 세계 시민운동의 기념비적 사건들을 거치며 왕실 제도를 구축해 왔다. 따라서 안정적이며 평화적인 영국의 군주제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국채 보호를 전쟁의 목적으로 삼았던 일본의 상황과는 크나큰 차이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천황제에 내재된 역사적인 문제점천황은 대 일본제국 헌법 상 주권자, 최고 권력자이고 통수권자이며 신이기까지 한 존재로서 전후 역사에 있어 히로히토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제는 비록 신권 천황제에서 상징 천황제로 그 겉모습이 바뀌기는 했지만 실제로 끊임없이 연속되어 왔다. 상징 천황제가 국민 대중 사이에 뿌리 내렸다는 것은 천황과 국민 모두가 전쟁 책임 문제를 불문에 붙이기로 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독일은 패전 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철저히 배상을 했고 그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이와 대조되는 일본의 대내적, 대외적 과거 청산 부재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천황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천황 히로히토라는 최고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범죄자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다. 패전 후 독일은 9만 명이 넘는 나치 관계자를 스스로 재판하여 7천 건에 가까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도쿄 재판 은 도죠 히데키등 7명의 교수형 집행만으로 종결되고 그것을 전후하여 연금 상태에 있던 A급 전범들은 모두 석방되었다.3)히로히토의 면책은 천황과 공범 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천황에게 들이대어진 칼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어진 칼이다 라는 것을 잠재의식으로 느끼고 있었던 일본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면책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주체적인 전쟁 책임 의식의 형성, 즉 과거의 극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4)요즈음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항의에 일본은 그것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의 범죄행위로 처벌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배상을 시도하지 않았고 무관심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천황제의 존속 으로 스스로를 면책한 일본의 논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청산할 것도 없다 라는 식이다.천황제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상징 천황제나 천황에 대한 국민의 일반 여론 조사를 보면 천황제의 폐지에 동의하는 사람은 전체의 9%를 넘지 않는다. 이처럼 상징 천황제의 존속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은 전후 사십 수년 동안 일본 국내에서 일관되게 70~80%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천황제 의식은 체제 측에 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의도적인 재생산과 이를 수용하는 국민 쪽의 내재적 요소가 결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천황에 대한 열렬한 지지기반은 시간이 감에 따라 조금씩 줄어들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이 제도를 없애도 좋다는 데까지 일본 국민의 지지 기반이 가라앉을 조짐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상 징 천 황 제 에 대 하 여강화존속폐지모르겠다(%)일반여론*************955194890.34197512573.375.71977*************986484919863.972.45.6 5)오늘날 상징 천황제 에 내재된 위험성국가 통치에 천황의 권위가 이용되는 역사가 되풀이되려 한다-이와이 다다쿠마일본은 천황제가 폐지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쟁 전 천황이었던 사람이 새로 제정된 헌법 아래에서도 여전히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실로 모순된 역사를 가졌다. 이렇게 보존된 천황이 후에 지배층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 통합이나 국민 통합의 수단이 될 때에는 배타 , 억압, 차별을 불러 일으켜 개인의 정체성(identity) 설정을 규제, 억압, 동화시킨다. 일본은 천황제라는 상징을 내세워 과거 단일, 통일, 균질, 진보, 번영을 절대 이상으로 내세우며 세계 침략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오랜 역사동안 이어져 내려온 일본 천황 제도는 오늘날에도 순식간에 나라 안을 통합하는 내셔널리즘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6)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오늘날에도 황실의 경사나 불행을 캠페인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매우 많으며 문화의 날(메이지 탄생일), 근로 감사의 날(황실 조상 제삿날)과 최근 새로 제정된 바다의 날(일왕이 배로 요쿄하마에 귀향한 날, 7월 20일) 이란 국경일은 유래를 알고 보면 일왕의 권위와 관련된 것들로서 일본 국민을 정신적으로 동원하는 기능을 갖는다.즉, 일본의 지배층은 전후 천황제의 책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날 새로이 일본 문화 전통의 핵심에 천황을 위치시키고 상징 천황제의 정신적 권위 를 끊임없이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전후 눈부신 경제적 성공으로 고무된 일본인은 서양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제2, 제 3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움직임은 일본 내에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21세기 새로운 일본 천황제 파시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마치며...일본은 전제와 예증, 압박과 편협을 지상으로부터 영원히 제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일본국 헌법 전문 2장천황제는 전후 일본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하는 매듭이자 다음 시대를 향한 출발점이어야 했으나 실제로 지금까지 20세기 과거 청산 문제는 아무런 해결도 보상도 되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필리핀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천황 히로히토의 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고 일본 천황의 자국 방문을 추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아직 단 한번도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정식으로 받아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세계의 경계와 비난의 눈초리는 당연한 것이다. 일본이 그들의 헌법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계, 세계사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신뢰받을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이 되기 위한 방법은 그들의 천황제 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 침략, 식민지 지배의 과거를 가진 나라로서 아시아가 보내는 눈길을 받아들여 종전의 무관심한 태도에서 벗어나 과거 천황제의 모순을 밝히고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
여성 할당제 실시되어야 한다.헌법 제6조에 근거하여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제4조 제1항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사실상의 평등을 촉진할 목적으로 당사국이 채택한 잠정적 특별조치는 본 협약에서 정의한 차별로 보지 아니하나, 그 결과 불평등 또는 별도의 기준이 유지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기회와 대우의 평등이라는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이러한 조치는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의 합법성을 분명히 하고 특별조치로서의 적극적 조치의 한시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또 이 조항에 근거하여 『교육, 경제, 정치 및 고용에의 여성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 우선 대우 또는 쿼터제 같은 임시적 특별조치를 보다 많이 활용할 것』을 각 국에 권유하고 있다. 즉 이 협약을 통해서 유엔은 남성과 여성의 사실상의 평등이 이루어질 때까지한시적으로 적극적 조치를 허용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여성 할당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에서 여교수들이 여성 교수 채용할당제 실시 등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는데,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여성할당제는 50%도 아닌 10% 였다. 이러한 실정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지 알 수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고등 교육을 받고 있으며 유엔 개발 계획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성개발지수는 174개국 중 30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권한 지수는 78위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의 사회인지 알 수가 있다. 세상의 여자는 반이다. 하지만 똑같이 고등교육을 받고 똑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것은 고위직에 있어야 하는 또는 고위직에 있을 수 있는 여성들의 능력과 노력이 헛된 수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며 이것은 사회의 큰 손실로 작용되는 것이다.여성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편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그러한 능력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서라도 여성 할당제는 실시되어야 한다. 앞으로 세계는 문화 중심의 세계가 되어 갈 것이다. 옛날에 노동 중심의 사회, 근력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남성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여기 저기에서 여성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다.일부 사람들은 여성 할당제를 실시함으로서 능력 있는 남성들이 오히려 누락되어지는 역차별 현상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역시 남녀차별 주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반대로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월등한 여성이 있는데, 50%센트라는 수치로 인해 열등한 남성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여성 할당제는 여성만을 위한 평등 사상은 아닌 것이다.현재 법·제도상의 남녀평등권 보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활 영역에 다분히 일어나고 있는 사실상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한국 여성의 정치, 고용, 교육 등의 분야에서 불평등한 현실을 극복하고 사실상의 평등 실현을 위해 각 분야 여성의 대표성을 증진시키는 한 수단으로서 할당제는 아주 유용한 사회변화의 도구로 기능 할 수 있다.여성이 인구수에 비례한 몫의 자리와 역할을 하게 될 때 여성문제는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정책으로 결정되고 구체적으로 집행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모든 국가 권력 담당자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지위가 당연시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여성 인적자원 활용을 가능케 하여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사실상의 남녀평등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나라도 이제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의식도 증가되었고 정치 집단들도 여성유권자의 지지와 필요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과 교육수준도 충분히 성숙된 만큼 이의 활용도를 한 단계 높이는 각 분야의 할당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한다.여성할당제 실시되어선 안된다.2000년 총선이 닥치자 여당은 국회의원 비례대표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것을 법제화시키고 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에까지 여성할당제를 확대 실시해 나갈 것을 발표했다. 여성 할당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97년 공약으로 그동안 남성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온 여성에 대한 제도적인 배려로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법제화시키는 데에는 반대한다.먼저 정치적인 부문에서 살펴보면 여성의원의 낮은 비율이 그동안 여성할당제의 부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역량 있는 여성 정치인은 제도적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브룬틀란트 사무총장, 스리랑카의 찬트리카쿠마라퉁가대통령, 리트비아의 바이라 프라이베르카 대통령, 영국의 마가릿 대처 전총리 등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여성 정치인은 그들의 노력의 결과로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정치적인 능력이 있는 여성은 스스로 정계에 진출하고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는 이직까지 이러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은 적이 없으며 그러한 제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경제적인 면에서 살펴볼 때도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이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기업이란 최적 인력의 활용 이라는 철저한 경영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남성과는 다르게 여성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 생리, 산전, 산후 휴가로 인한 손실을 감수하고 탁아시설 설치, 운영해 나가는 것은 기업의 이윤창출에 큰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별다른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의 경우에도 여성할당제의 실시는 실력과 자격을 기준으로 경쟁하는 분위기를 해친다.또한 개인차이를 무시하며 남성이라는 집단 전체에 불이익을 준다는 문제점이 있다.자질과 능력이 모자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사하게 되는 여성도 열등하다는 오명을 견디기 힘들 것이며, 무능력한 여성은 직장 내에서도 능력 있는 남성의 들러리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실제 조사에서 공직자 채용 여성할당제에 대해 여성은 66.0%가 반대, 일반 직장의 경우엔 여성의 70.8%가 각각 반대의 입장을 보여서 실제로는 많은 수의 여성이이러한 특별대우를 달가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여성할당제와 비슷한 제도를 대학 입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경우 오랫동안 실시해오던 남녀의 구분 모집제도를 2000년부터 폐지했다. 남녀학생 모집비율을 미리 정해놓고 신입생을 뽑는 음·미대의 선발방식이 평등성과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고. 성차별 금지라는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제도의 폐지에 찬성했고 남녀가 공정하게 경쟁하며, 노력의 정당한 대가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였다.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성할당제가 법제화되는 데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단 강제적인 제도의 차원이 아니라 권유적인 방법으로 실시하게 된다면 많은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육아 및 탁아시설의 확충하고, 높은 수준의 여성 교육을 실시하여 고학력의 여성을 많이 창출함으로써 여성의 고용비율을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제도의 실시는 많은 문제점을 낳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