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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 정리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정리Ⅰ.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는 누구인가?코메니우스(1592-1670)는 대교수학의 창시자로서 그는 철학자요, 목사요, 교육자이며, 신학자이며, 모하비아교회(형제연합교회) 목사이기도 하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적으로 참 비운의 인물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고국을 떠나 망명생활로 배회하였고, 두 번에 걸쳐 그의 가족을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육사상가로서 오늘날 그의 교육정신과 교육신학과 교육내용들은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회복의 개혁이며, 회개의 요구를 제시하였고, 미래 희망을 열어 준 희망을 준 위대한 대 교육사상가임에 틀림없다.Ⅱ. 코메니우스 교육사상코메니우스는 17세기의 뛰어난 교육사상가로서 교육의 기초가 되는 그의 책 성격을 보면, “대교수학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완전한 기술이며 기독교 국가들의 모든 공동체에 학교를 세워 바르고 즐겁고 철저한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현세와 내세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탁월한 방법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적 신비주의 세계관이 그의 인간관, 자연관이다.1. 인간관(기독교적 신비주의 세계관)코메니우스는 인간에 대하여 논함에 있어서 모든 인간이 최초의 인간 아담이 타락 이후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는 성경적 인간관을 믿고 있다.코메니우스는 그의 신학에서 인간의 속성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인간관은 기독교적인 신비주의 세계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대교수학]의1장부터 5장까지 인간의 존재와 목적을 제시하면서 인생의 방향, 삶의 방법과 요소를 밝히고 있다. 제 1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한 것 중에서 최후에 창조한 것으로 가장 완전하고 탁월한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을 조물주가 창조한 만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고 전제하고, “나는 모든 피조물, 즉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을 너희 발 아래 두었으며 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인 가장 귀중한 피조물로서 우주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소우주(microcosm)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 모든 사물들을 지배하고, 그것들의 이름을 명명하는 고유한 권한을 부여받았다.코메니우스는 창1:26-28에 근거하여 인간의 속성을 이해한다.1) 합리적인 피조물2)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3) 창조주의 형상과 기쁨인 피조물이것은 인간이1) 모든 사물을 알고2) 모든 사물들과 자신을 지배할 힘을 부여받고3) 자신과 모든 사물들은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그의 타락으로 인해 죄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즉, 신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인간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성과 덕성, 경건성을 최고의 경지로 설정한 것이다. 신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전지성, 전능성과 자족성에 상응하고 인간의 지혜, 유용, 거룩 등으로 표현된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능력들은 신에 의해 주어지는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동시에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명령을 수행하게 하는 사명을 위한 재능이기도 하다.코메니우스는 인간이 타락한 인간성에서 본래적이고 고유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그는 새로운 인간성 회복의 과정을 교육이라고 보고, 교육에 의하여 인간은 본래적인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부합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코메니우스는 도덕적 도야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육없는 학교는 물없는 물레방아와 같다.”는 표현에서 잘 알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육이 없으면 움직이는 동력이 없어지게 되며 갈지 않고 내버려둔 밭과 같고 전지해주지 않는 야생나무와 같다”고 하였다.코메니우스는 우주의 생명체의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이지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과 영을 겸비한 이성적인 피조물이다. 이러한 인간은 이성적 요소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이성과 언어, 손을 물려받았다. 인간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하여 모든 사물들의 지식과 요소와 진리를 습득하며, 그 자신이 합리적이고, 영적이며 신령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 세 가지 도구들은 사고력, 상징적인 표현력5, 지식의 활동을 가능케 하며 다른 피조물들을 초월하는 창조적인 능력이다.인간은 이성으로 내면세계 속에 있는 신령과 빛과 외면세계의 진리를 이해하고 분별하며 선악을 판단한다. 언어를 통해서는 이성이 지시하는 모든 것을 교환하며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즉 언어를 수단화하여 이성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한다. 손의 기능은 이성의 빛을 통하여 이해하고, 언어의 수단을 통하여 전달된 모든 것을 행동을 표현하게 한다. 이러한 세 기능은 볼 수 있고, 이름지을 수 있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세가지 도구들, 즉 마음과 언어와 손을 주신 것이다. 이러므로 인간은 우주와 자연의 모든 사물들을 이 도구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경이로운 존재이며, 이러한 이성적 요소들은 교육의 과정을 통하여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피조물임을 강조한다. 코메니우스는 이것을 토마스 아퀴나스의 세 가지 마음의 상태를 인용하여 설명한다.‘우리는 이 세상에서 세 가지 형태의 생활, 즉 식물적인, 동물적인, 그리고 지성적 혹은 영적인 삶을 산다. 이 중에서 실물적인 생활은 육체에 한정되어 있고, 동물적인 생활은 감각의 작용과 운동에 의하여 외부의 대상에까지 확장될 수 있고, 세 번째 생활은 천사들과 같이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활의 마지막 단계가 이전의 두 단계에 의해 우리 속에서 가려지거나 숨겨지는 것과 같이, 그것이 완전성에 이룰 수 있는 미래적 상태가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다며, 죽음으로써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특히 인간은 만물을 지배하는 신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게 생각했으며, 그러한 인간은 신에게 축복을 받는 존재로서 신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에게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지식과 형상을 반영할 수 있는 이성, 언어, 손(행위)을 소유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인간은 창조적인 활동의 존재로서 자신의 완전성을 성취하며 주위의 모든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속성의 우주성이 신적이며 자연적인 우주와 함께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완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성과 잠재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죄악에 빠질 위험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며, 새로운 창조적 활동을 전재할 수 있다. 코메니우스의 인간이해는 세 가지로 요약되는 바 첫째, 하나님의 중한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할 수 있으며, 둘째, 선택과 행위의 자유를 내재하고 있으며, 셋째 이성의 빛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지혜롭게 자기 자신의 선택과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2. 자연관(교육방법의 기초)인간을 둘러싼 일차적인 교육 환경을 자연이라 한다면, 인간은 자연의 순환과 원리 속에서 적응하며 발전, 교육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자연은 교육이론의 근본 원리로서 중세의 사상가들이 신을 숭배한 것처럼, 근대 교육은 자연을 따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인생의 이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자연개념은 범애주의 학자들에 의해 합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자연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 코메니우스는 자연세계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책으로 언급하여, 자연을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그의 영원한 속성으로 간주한다. 즉 자연은 하나님의 속성과 지혜를 알게 하는 교과서라는 말이다. 이러한 자연은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의 상징이다. 인간의 자연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사물들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창조된 사물로부터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의 교육의 장이 되어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규범과 법칙을 제공하여,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자연세계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모든 현상은 성경과 함께 탐독되어져야 한다.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 자연은 우주의 가장 중요한 전제들이며 하나님은 자연과 성경의 저자이고, 인간은 자연의 해설자이며, 자연은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하는 하나님의 생명책이다. 이러한 상관관계가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의 근거이다. 세 사상에 근거하여 자연학교, 인간학교, 하나님의 학교를 제시, 발전시킨 것이다. 자연학교는 다양한 피조물이 생존하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며, 인간학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고 하나님만이 가르치실 수 있다.코메니우스는 세 학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첫째 학교에서는 사물이 가르치며둘째 학교에서는 인간 자신이 가르치며셋째 학교에서는 하나님이 가르친다.그러므로 인간은 사물들에 의하여 인간 자신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하여 배우게 된다.코메니우스는 우주를 물질, 빛, 정신의 세가지로 본다. 물질은 혼돈된 실체로서 물체를 형성하는 질료를 의미하며, 정신은 본래 생명으로써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이 물체에 내재하여 물체를 만들어내는 실체를 말한다. 또한 빛은 본래 가시적이고 동적인 실체로서 스스로 밝게 빛나고 물질을 비추며 물질로서 정신을 접수하는 즉 물질에 형태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코메니우스가 3원론을 믿게 된 이유는 그의 기독교 신앙 특히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때문이다.그는 당시의 자연철학을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과 합치되게 하기 위하여 모든 학문적 인식의 원천으로서 베이컨의 경험론과 데카르트의 합리론, 기독교의 신비철학을 통일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질료와 형식만으로는.
    교육학| 2015.10.23| 6페이지| 1,5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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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위 없는 자 처럼
    권위 없는 자처럼 [프레드 크래독, 1974]● 권위 없는 자처럼, 프레드 B. 크래독 지음/역자 김운용,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14.04), 336● 저자소개: 프레드 크래독은 에모리대학교의 캔들러신학교의 신약신학과 설교학의 반디(Bandy) 명예교수이다. 테네시의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 목사로 안수받았다. 크래독은 필립스 대학과 밴더빌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설교학과 신약학교수로 있다가 은퇴하였다. 영어권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설교학자이면서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영어권의 12대 설교자로 선정된 바있는 능력있는 설교자이기도 하다.Ⅰ. 설교의 현재 상황1장. 어두운 그림자에 뒤덮여진 강단설교자들은 늘 비판 받고 있고 개선 방향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그냥 설교를 설교자가 지고 가는 십자가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강단이 바로 서지 못한다면 교회와 사역이 바로 서지 못할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을 성가신 문제로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매우 복합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냥 전통적인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조금씩 고쳐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태도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드 크레덕은 현대 설교의 문제를 다음의 여섯 가지 문제로 짚어 주었다.1. 미국의 행동주의 신학 - 미국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는 적극적 행동주의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모토는 미국적 신앙이다. 유럽의 교회가 신학적 입장을 변호하고 주장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면 미국교회는 행동을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이다. “당신이 말하는 설교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 나타나는 설교를 보고싶다”2. 언어의 위기 시대와 교회 언어의 실패 ? 말의 힘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것은 설교의 위기를 말한다. 오늘날 언어의 의미가 쇠퇴한 것에 기인한다.1) 전자 미디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끝없이 발전해 가는 새로운 형태의 말들이 우리를 둘러 싸고 있다.2) 전통적인 종교 언어의 본질 때문이다. 에벨링은 “단순히 종교적 언어를 신뢰하지 못하는 차원들이 줄어들면서 개인주의의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제 구두(oral)시대에서 문자(literal)시대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청각에 의존하여(aural) 메시지를 수용하는 시대로 전화되어 진 문명 속에 살아가면서 제기되는 질문은 “구두로 전달되는 스타일은 도대체 어디에 적합한 것인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심이 더 깊어 가는 시대가 되고 있는데, 이는 그분의 이름이 이 시대 가운데서 너무 공허하고 신중하지 못하게 사용되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언어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하는 현상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사람들은 수다쟁이가 되어왔다”는 말이 이 시대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 되고 있다.4. 변화하는 시대의 설교자 ? 설교자들이 확실성을 상실하고 점점 불확실성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공간을 중심으로 지각하는 것은 교회 설교와 복음전도, 그리고 교회의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 본래적인 요소였다. 교회는 세계 속에서 공간(space) 영역을 확보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제 교회는 점점 더 시간(time)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철학적인 연구들은 실체(substance)에 대한 고찰에서 시간과 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것으로 그 관심을 전환하게 되었다. 과정철학, 진화적 종말론, 실존주의에 의해 신학이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에 대한 전통적인 형이상학적인 이해는 역사적인 이해로 대체되고 있다. 그저 목소리만 높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태도는 아무런 결실이 없는 설교가 되고 말 것이다. 아이는 가졌으나 출산할 힘이 없는 산모가 겪는 비참함이 오늘의 설교자들이 처한 상황이다.5.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 ? 기독교계의 붕괴는 교회가 그 동안 형성해왔고 지지해 온 문화의 발판을 상실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설교자들은 성직자로서의 권위와 직제에 대한 권위, 혹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전제할 수 없게 되었다. 설교자와이션은 양자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하는 성격을 가졌다. 여기에는 늘 들려지는 소리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들’ 사이에 있는 의식을 환기시키고 그래서 당연히 ‘대화적’이다. 그리고 들려지는 그 현실 속에서 언제나 현재적이고 경험적이다. 이런 구두적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이슈가 주어질 때a) 결론을 내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늘 개방적으로 다가오며,b) 이 개방성은 인간적으로는 하나의 치유의 방편으로 나아오기도 하고,c) 그러는 가운데 어떤 내적인 세계 즉 신앙이나 가치 판단 등에 대하여 드러나게 될 뿐 아니라,d) 결국에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어떤 자발성을 제공하게 된다. 이것은 설교보다도 오히려 성경공부에 더 잘 적용될 만한 부분이며, 설교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설교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3. 변화가 요구되는 설교 방법론 - 설교 방법의 변화가 요청되는데, 그 요점은 설교가 결론적으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설교가 경직성을 벗어야 된다는 면만 아니라 설교의 공동체성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4. 언어에 대한 철학적 접근 - 대표적으로 비트겐쉬타인과 하이데거를 들 수 있다. 비트겐쉬타인은 쓰임 이론으로 유명하다. 언어는 과학적 분석보다도 실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린 것이며, 그렇게 볼 때 설교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언어로서의 이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언어에 대하여 너무 신비적으로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로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매우 해석학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 이해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언어이며, 설교는 그 특별한 예이다.5. 신학 연구와 성경 연구 - 신학도 언어 문제와 관련해서는 철학과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다. 해석학이 문제인 것이다. 가장 궁극적인 존재 자체는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는데, 그것은 발견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이해가 문제이다.6. 설교자가 명심해야 할 일1) 말씀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에 방법 - 연역적 설교에서는 내용이 전개되기 전에 결론이 이미 나타나는데, 이는 의사소통으로서는 극히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본다. Bruno Dreher는 “설교학적 귀납법”을 주장했는데, 오늘날 인간생활을 설명하는 일에서 본문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 방법적 출발점이다. 저런 연역적 설교는 3개 정도의 대지를 각각의 설교로 준비한 다음 적당히 붙여 놓은 것일 수 있다고 본다.3. 귀납적 방법 - 경험에서 출발해서 진리나 결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그리하여 귀납적 설교는 권고보다는 기술을 하고, 명령하기보다는 확언을 한다. 그래서 귀납적 움직임은 무엇보다 청중과의 동일시 내지는 유비가 일어난다. 예수님도 일반적 가르침보다는 특별한 상황과 관련하여 말씀하셨다. 프레드 크래덕은 “꾸밈없는 사실을 통한 치유법”(p.117)이란 말로 귀납법의 장점을 또한 설명한다.4. 귀납법에서의 전제조건 ? 청중의 경험과 관점이 설교에서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는 것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도들은 연역적 원칙에 따라 꾸지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제는 있지만 노력하고 있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성경의 위로, 궁극에의 추구가 된다. 귀납적 설교의 기본요소는a) 구체적 경험이 설교의 중요한 요소이다.b) 회중은 설교의 움직임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5. 귀납법 설교 방법에 대한 비판 - 귀납적 설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다. 크래덕은 이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란 관점 위에 서 있다. 귀납적 설교는 말하자면 분명히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며 크래덕은 여기서 그 위험성을 짚어둠으로써 오히려 귀납적 설교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a) 귀납적 설교는 설교자 편에서 볼 때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채로 문을 열어 둘 것을 주장한다.b) 설교에 윤리적 요소가 결여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렇기보다는 귀납적 방법을 통한 새로운 전략을 얻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크래덕은 말한다.c)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에게 너무 예속시키는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연역적 방식으로 몇 개의 설교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통일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의 경험이 통일성을 위한 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이 본문 전체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의 경험이 갖는 중요성으로 인하여 어느 한 시기에 서서 그 본문을 그 한 의미로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이해한 것은 아니라 할 지라도 그 자리에서의 통일성은 확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성경을 모두 다루었다는 탁월성에 대한 유혹보다는 어떻게 본문과 청중을 연결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 연결 가운데 단일한 주제에로 나아갈 것인지, 그런 일에 노력하는 것이 귀납적 설교의 통일성에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6장. 귀납적 움직임과 성경 본문1. 성경 석의에서 설교로 나아가는 시도 - 성경 주석과 설교는 동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면서 지나치게 억눌리고 경계하는 일에서 목회자가 해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상황 가운데 전달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 주석과 설교가 꼭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명백히 인정되어야 한다.2. 귀납적 성경 연구와 연역적 설교 - 크래덕은 일관되게 이 귀납적 움직임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주석은 귀납적으로 한 다음 그 귀납한 결론을 출발점으로 해서 연역적 설교를 하는 것은 넌센스라 보고 있다. 설교자가 성경 연구에서 귀납하였던 그 단계를 설교에서 다시 되짚어가는 것이 왜 안되겠느냐는 입장이다.3.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경적 설교 - 오히려 그러기보다는 크래덕은 현실적이고 책임있는 성경적 설교라는 개념을 취한다.1) 회중의 그 어떤 추함을 무릅쓰고 회중을 위한 해석을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2) 우리가 교회에서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3) 성도를 위해 성경을 해석하는 과업을 오히려 황공히 여기면서 설교해야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시는 손길이 .
    인문/어학| 2015.10.23| 8페이지| 2,000원| 조회(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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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활성화 사역 -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교회 활성화 사역
    교회 활성화 사역: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교회 활성화 사역Ⅰ.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기1. 교회 활성화 영적 갱신과 전략적 지도력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비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야를 넓혀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교회가 현재의 사역에 몰두하다가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놓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체 그림이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즉,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오는 것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그의 계획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의 시간 안에 창조의 시간을 만드셔서 그 시간 속에 사람을 두시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라는 공간을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 계시록에서는 이 말씀대로 수많은 민족과 백성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본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이 수많은 민족은 창세기의 하나님의 명령과 연결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살펴보자면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 번성하여 충만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이 명령을 따라 이 땅 어딘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생하여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결국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는 타임라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큰 그림을 속에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지역교회는 구속사의 어느 위치에 서있고, 또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주변의 사람들의 중생을 위해 지역사회를 구속사 성취를 위한 선교활동지로 생각하면서 지도자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깨닫는 것은 어떤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분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향한 비전을 보여준다.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명령① 위대한 약속 [마의 백성으로 세우기로 계획하셨던 것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의 법으로 제정하는 역할을 했다.③ 에스더는 포로기에 하나님을 섬겼다. 그녀는 왕에 의해 선택되었을 때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를 통해 왕으로부터 호의를 받았다. 에스더의 중보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에스더는 이스라엘을 건축하고 시스템을 회복시켰다. 그래서 에스라와 에스더, 느헤미야가 한 일은 모세와 아론이 했던 일과 유사하다. 이국땅에서 포로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제 2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다.④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다시 백성을 회복시키신 후 성령이 오셔서 1세기 교회를 형성하게 하셨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방향, 즉 성도들의 헌신과 예배와 교제의 삶이 제시된다. 이러한 삶이 지역사회의 칭찬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곧 하나님께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도자의 영적인 갱신을 일으키시고, 그 이후에 전략적인 지도력이 나타나도록 인도하신 것이다.2. 교회 활성화의 기반 조성가. 비전팀의 구성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적 모델을 통해서 이 일을 이뤄갈 비전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도와 토론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깨달아 비전선언문과 구체적인 전략을 만들어 교회에 제공한다. 비전과 전략에 따라 모든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평가, 해결, 책임을 지고, 교회를 돌보는 것이 비전팀의 역할이다. 많은 교회가 비전에 대한 평가와 책임에 소홀하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일이 진행될 때 바쁘게 운영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진정으로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내고,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이와 같은 역준비 - 그 이후 어떻게 사람들을 여기에 동원하여 일을 이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4. 활성화를 위한 교회의 네 가지 습관가. 능력있는 기도 - 이것은 영적인 훈련이다. 많은 훈련이 있지만 이것은 교회의 생명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교회 활성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습관이다. 능력있는 기도라 함은 얼마만큼 신자가 기도에 의존하는 가를 뜻한다. 즉 어떤 일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 있어 하나님께 제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다.나. 성경적 기반 - 현대 교회는 많은 교인들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 약간의 지식은 있다해도 깊지는 않다. 깊은 지식이라고 해도 신학적인 면에 치중하여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성경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성경을 알지 못하여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만큼 교회의 성도들이 기본적인 성경진리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 지도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성경의 지식을 전달하고 그들로 하여금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문제에 도달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통해 깨닫고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다. 높은 헌신도 - 분주한 일과 가운데 비전이 한 요소로 끼워져서는 안 된다. 너무 바빠서 교회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 교회가 모든 기준을 내려놓게 되면 변화의 과정이 중지되고 만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값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죽어야 하는 비용을 치를 만큼 높은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라. 불신자 전도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로 세워져야 한다.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대한 진실한 모습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5. 교회 활성화 주기: 세 가지 주요 단계가. 성장기- 미래지향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에 초점이 말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발견하고, 또 발견한 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1. 상황을 인식하기 위한 평가 도구가. 사실자료의 수집 - 우리 교회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때 스스로 발견하지 않으면 주인의식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나. 과거 역사의 회고 교회의 지난 역사 속에서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가 살펴보면서 통계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이런 질문을 쇠퇴기 교회에 던진다면, 그들은 거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 느끼는 것이 것의 없을 것이다. 교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손이 함께 해야 한다.다. 현재 영적상태의 진단 - 교회 역사에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는지, 깨어진 관계가 있는지를 분석, 진단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화해하는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축복이 임하여 활력을 찾게 되는 것이다.2. 생명 주기의 세부 분석: 여섯 개의 세부 단계생명주기는 모든 생명체에 적용된다. 교회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받는다. 곧 시간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는 사실이다. 생명주기가 있는데 각 단계에서 강력한 영적 갱신이 나타나면 정체기나 쇠퇴기를 넘어서 또 다른 성장기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가. 성장기의 시작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주도하며, 지역사회를 중점으로 회심에 의한 성장을 이룬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은 성장기의 특징인데, 이런 특징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은 현재는 바라보지 않고 미래만 보는 것을 말한다. 미래지향적이라 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발전된 성장기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나. 발전된 성장기 미래와 현재 지향적인 비전이 교회를 이끌어 발전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지역사회와 교인 둘 모두를 중점으로 하기 때문에 전도와 수평이동을 통해 교회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비전팀은 이 기도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이 질문을 던지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이처럼 서로가 받은 음성을 모아 함께 나눌 때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는 어디까지나 성경에 근거하여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구체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분별하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전심으로 구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계시해주신다.나. 그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한 후, 상황이 변화될 때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처음에 추구했던 하나님의 계획이 일이 진전되면서 변화될 때 수정하고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비전에 대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일을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면 우리는 변화의 과정을 따라 수정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2. 활성화의 동기 - 목회자 자신과 동역자들은 긍정적인 동기를 위해서 잃어버린 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좀 더 영향력을 끼치고 교인의 영적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부정적 동기는 교회가 작기 때문에 교인이 줄어드니까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 동기에 의해서 활성화도는 것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정적 동기를 통해서도 활성화를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 재정을 위해 시작한 교회는 교회의 재정이 충당되면 활성화가 시들해져서 멈춰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 동기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지도자가 교육을 통해 교인을 긍정적인 동기로 이끌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3. 교회가 전도해야 할 핵심대상은? - 핵심대상이란 교회의 비전이 완수되기 위해서 교회가 활성화 초기에 접촉하고 전도하는데 집중해야하는 대상이다.
    인문/어학| 2015.04.08| 18페이지| 4,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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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점이 맞춰진 삶 수련회
    초점이 맞춰진 삶 수련회Ⅰ. 초점이 맞춰진 삶(focused living)의 개요1. 수업의 전제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지도자로서의 내가 하나님께서 교회와 각 개인에게 주신 복음전도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그 동안 살아왔던 삶의 의미와, 또 그 삶을 통해 나에게 주신 독특한 소명을 발견하고, 그렇게 발견된 자신의 소명에 삶의 초점을 맞추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고 각 과정을 진행하였다. 곧 나의 지나온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독특한 소명을 주셨다는 것과 그러한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에 모든 관심과 초점을 맞추어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나라들 가운데 알려지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 수업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다.2. 수업의 목표이 수업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가를 발견하고,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달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시고 예비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됨으로 인해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도자인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초점을 맞춘 삶을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사역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을 확립하도록 하여 분명한 방향성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3. 수업의 진행수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인생 여정표를 만들면서 나의 과거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과 경험들을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당신의 자녀로 형성해 가셨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준비를 하셨는지를 깨닫게 한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개인소명 선언서를 작성함으로써 나의 미래에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아 삶의 방향과 초점을 그 소명에 맞추도록 지도받았다. 이 수 교수님에 의해 인도되었고, 나 스스로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수업의 진행을 따라 감으로써 내가 나 자신의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과 손길을 발견하며,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라시는가를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자신의 삶의 목적과 가치, 비전을 열린 가슴으로 나눔으로써 서로 서로에 의해 코칭과 격려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Ⅱ. 초점이 맞춰진 삶(focused living)의 단계별 내용변화와 갱신은 지도자 개인의 삶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 자신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알게 될 때 삶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게 된다. 그로 인해 지도자가 하나님의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아가게 될 때 교회는 놀라운 변화의 계기를 경험하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 속에 새로운 변화가 단계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1. 초점이 맞춰진 삶초점이 맞춰진 삶이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한 내용과 내 자신의 삶과 사역에 존재하는 기본원칙 결과를 얻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사역하는 방법이나 방식, 곧 핵심가치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께서 성취하고자 하시는 결과, 그것에 담겨진 내용을 성취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초점이 맞춰진 지도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어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 의도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명확히 드러난다면, 이것이 나의 소명이 되고, 나는 이를 이루기 위한 용기와 신념을 가진 지도자로 성장해 가야하는 것이다.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먼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뜻의 발견은 항상 나의 삶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막3:13-14]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시니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곧 지도자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에 선행된다는 것이다.나. 초점화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의 삶 속에서 그분의 선하신 일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다. 초점화는 나 스스로가 나의 과거를 분명하게 확인한 후 미래를 발견하고, 그를 통해 소명을 좇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빌6:10]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 그 결과 뚜렷한 미래의 소망이 나를 용기로 이끌어주게 되는 것이다. [수1:9]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2. 중요한 개념의 정의가. 경건한 지도자란 하나님께서 주신 역량과 책임감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추구하도록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나. 리더십이란 영향력을 의미한다.다. 사역은 나의 영향력을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라. 사역자 또는 선교사란 자신의 영향력을 다른 성도를 멘토하거나 양육하는데 실제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더욱 많은 추수를 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3. 당신만의 특별한 여정자신의 발전으로부터 교훈을 결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하고 궁극적인 기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해준다.가. [예레미야 29장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 after part / end / future- 지금은 미래에 성취된 우리의 모습이 흐릿하지만 우리의 장래의 비전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점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될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할 만큼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취하는 모습인 것이다.나. 개인 소명①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로 곧 나의 소명이다. 청교도의 신앙을 보면 모든 사람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소명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지도자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을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일생동안 훈련하고 세워나가시는 것이다.② 하나님은 나를 일생동안 훈련하고 세워 가시기 위해 항상 일하고 계신다. 이는 먼저는 존재(being)와 관련해서 인격적 나 자신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관계적 우리는 원래 관계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인격은 관계 속에서 나타나며 확장된다.인 영역에서 나타나며, 일/사역(doing)과 관련해서 기술, 지식, 경험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곧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순복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초점을 맞추는 삶의 기본 전제가 된다.4. 개인 인생 여정나는 어디에서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해서 의미 있는 사람들 사람들 - 부모, 친구, 선생님, 목사님, 코치, 배우자, 자녀 등등, 사건들 사건들 - 졸업, 결혼, 성취, 상실, 출생, 위기, 구원 등, 상황들 상황들 - 인생의 계획, 풍랑, 직분담당 등, 관계들, 일들, 학업, 장소들, 교들, 가족 등에 대해서 성찰해 보면서 인생 여정 도표와 개인 소명 선언서를 작성한다.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적인 명령으로서 기억을 잊을 때부터 범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궁극적으로 이루실 일을 이해하고 나아가기 위해서 기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나. 간단한 인생 여정표 작성: 나의 삶에 있었던 중요한 인물들이나 사건을 생각하도록 한다. 이 때 성령님께 간구하여 그 일들이 생각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한다. 내 인생을 형성한 사람, 사건, 상황들을 기억하도록 한다. 그중에서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을 가려내어 당시 경험했던 감정과 교훈을 기억, 정리한다. 인생의 각 과정에서 얻은 1-3개의 중요한 교훈들을 기록한다 하나님에 관해서, 가정에 관해서, 사역에 관해서, 관계에 관해서, 내 자신에 관해서, 인격에 관해서.5. 성경적 목적하나님께서 개인의 삶에 초점 [수24:15] 눈의 아들 여호수아 - “나와 내 가정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 [빌3:10-11] 다소의 바울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과 목적과 방향을 주기 위하여 사용하신 성경 말씀 [시22:10, 고후1:6, 신28:1]을 토대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마2:37-40, 마28:18-20, 요15:1-11, 요13:34-35, 롬15:6-7, 고후4:7-11, 빌3:7-10, 골2:6-7, 벧후1:5-11]].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말해줄 뿐 아니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 왕국의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6. 삶, 사역 가치들 - 초점이 맞춰진 지도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목적있는 삶, 사역, 그리고 일들을 가치들에 따라 이루어 가시는지 이해한다. 이 과정에서는 개인의 행동과 결정을 형성하는 중심 가치들과 교훈들을
    인문/어학| 2015.04.08| 7페이지| 2,5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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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법의 행위란 무엇인가(롬 3장 20절과 28절 비교를 통한 율법의 행위 고찰)
    율법의 행위란 무엇인가?(로마서 3장 20절과 28절을 통해서 본 “율법의 행위” 고찰)[롬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διτι ξ ργων νμου ο δικαιωθσεται πσα σρξ νπιον ατο, δι γρ νμου πγνωσι μαρτα.[롬 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λογιζμεθα γρ δικαιοσθαι πστει νθρωπον χωρ ργων νμου.번역본 간의 해석의 차이1. NASB: by the works of the Law;2. NRSV: by deeds prescribed by the law3. KJV: by the deeds of the law4. TEV: by doing what the Law requires or commands5. Living: by doing what the Law commands6. REB, NJB: by keeping the law7. NAB, NIV, Knox, Gspd, Wms: by observing the lawⅠ. 율법의 행위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율법의 행위란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라는 것이 단지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쟁을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면서 바울이 로마서에서 기록한 ‘율법의 행위’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살핀다면 성경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 Douglas J. Moo“율법의 행위는 율법에 순종하여 되어진 모든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바로 이 관점에서 그 의미를 제한하는 견해를 배격한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한 욕망으로 행해지는 의식(儀式)에 관련된 문제들이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대인임을 표시하기 위해 행해지는 할례, 음식에 관련된 정결법, 그리고 특별한 절기에 대한 준수와 관계된 모든 일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들은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Ibld., p. 209Moo에 이러한 이해에 대한 학자들의 이해는 또 다르다. Moo가 주장하는 율법의 행위란 율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논쟁이 있는 것이다.2. E. P. Sanders“율법의 행위는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 머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그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바울의 진술은 팔레스틴 유대교의 언약적 율법주의의 입장을 공격하는 주장이라고 한다. E. P. Sanders, Paul, the Law, and the Jewish People, (Fortress Press, 1983), p. 463. James D. G. Dunn“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들은 유대인들을 이방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유대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표시들(Jewish identity markers)이다.” James D. G.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nd edition, 2007), p. 201Dunn는 율법의 행위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런 것들은 할례, 음식법, 안식일 준수 등과 같은 것들이다 Moo, The Epistle to the Roman, p. 214바로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요, 그의 언약 백성이요, 따라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주는 표시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바울의 진술은 언약 백성의 구위들로 이해한다. 이것들은 율법에 의하여 요구된 것들, 즉 규례들을 포함한다. Ibld., p. 2152. E. P. Sanders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E. P. Sanders의 주장의 문제점은 팔레스틴 유대교의 율법주의적인 경향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율법의 행위들은 그것들이 비록 구원에 들어가는데 필수적이지는 아니하더라도, 구원에 머물러 있는 것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지적하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이 행위들이 수단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Ibld., p. 216하지만 유대교는 Sanders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율법주의적이었으며, 그는 유대문서들을 연구하면서도 여러 곳에서 율법주의적인 해석을 배제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이 유대교가 문서를 통해 명시하고 제시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율법주의적이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3. 율법의 행위에 대한 Douglas Moo의 결론Moo는 율법의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바울의 논쟁에 있어서 그 토대는 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는 그의 확신에 있다. 율법의 행위이란 그것들이 단지 율법의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것들이 일, 곧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일이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권리를 얻지 못한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보장할 만큼 어떤 일이나 행위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Ibld., p. 218Ⅲ. 믿음과 대조된 율법의 행위에 대한 견해1. John Murray“율법의 행위는 믿음의 본질과 대조되는 원리이다.”“유일한 대답은 행위의 본질과는 대조되는 믿음의 특별한 본질에 있다. 행위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이 누구이며, 또한 어떤 일을 했는가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항상 의로워진 사람에게 동반되는 덕에 대해서 고려하게 한다. 믿음의 특별한 본질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외관적(extraspective)이것을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여섯 가지 주장을 잘 요약한다.① Normistic service이것은 Lohmeyer와 Tyson의 견해로 율법 아래에서 삶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반대하는 것은 이것들이 실현불가능하거나 공로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고, 구원사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곧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시대의 전환이 왔기 때문에 유대인의 존재 방식으로 율법의 행위가 설자리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Thomas R. Schreiner, ‘Works of Law’ in Paul, (Novum Testamentum XXXIII, 3, 1991), p. 241② Jewish NationalismDunn에 의하여 율법의 행위는 할례, 음식법과 안식일 준수와 같은 유대인들의 정체를 표시하는 것들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율법의 사회적 기능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다.Sanders와 F. Watson의 주장 역시 이와 비슷하다. Sanders에게는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부인한 것은 그것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고,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Sanders는 바울이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고 또한 율법의 준수는 율법주의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인한 구원을 반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에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율법의 행위로 인한 구원을 배척했다고 주장한다. Ibld., p. 236Watson는 바울 사역의 사회적인 배경을 강조하면서, 율법의 행위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다는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바울은 그의 공동체가 유대 공동체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구원을 율법을 통해 오지 않는 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한다. Watson은 믿음과 행위 사이의 근본적인 대조는 은혜로만 주어지는 구원과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 얻게 되는 구원 사이의 신학적인 근본적 대조가 아니라 , Judaism, and the Gentiles, (Wm. B. Eerdmans Publishing. 2007), p. 178-89③ LegalismFuller는 율법의 행위가 그 초점을 할례와 음식법에 두지만 그 배후에는 율법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고 본다. 따라서 바울이 반대하는 것은 율법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율법의 오용이다. 즉 율법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유대주의의 합법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이다. Thomas R. Schreiner, ‘Works of Law’ in Paul, p. 976이와 비슷하게 Hubner는 바울이 배격하는 것은 율법주의라고 본다. 이 율법주의는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그의 주장은 비록 사람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내고자 하는 율법주의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러한 완전한 순종 역시 죄악된 것이다.④ Subjective GenitiveL. Gaston은 종전의 목적어의 소유적로 보는 견해를 배격하고, 율법의 행위를 주어의 소유격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율법의 행위는 율법을 행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율법이 하는 행위들이라는 말이다. 율법이란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4:15), 죄의 지식을 가져오며(3:20), 사망을 가져오고 (7:10), 속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7:11), 이런 일들을 하는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Stephen Westerholm, Israel's Law and the Church's Faith, (Wm. B. Eerdmans Publishing, 1988), p.116⑤ Human inabilityWesterholm는 율법의 행위를 일반적인 의미로 보고,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하게 율법에 순종하기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98
    인문/어학| 2015.04.08| 10페이지| 3,000원| 조회(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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