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사와 함께 충담사(忠談師) 또한 높은 경지에 이른 향가 시인으로, (安民歌)와 (讚耆婆郞歌) 두 편이 남아 있다. ... 는 경덕왕이 월명을 만나 를 얻은 6년 뒤 또 다시 천재지변이 나타나게 되자, 월명사처럼 세력을 잃고 화랑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미륵을 숭상하던 국선지도의 승려인 충담사에게
월명사, 융천사, 충담사는 전자의 예요, 석양지,석영재,석원광,석보양,석혜숙,석진표 등은 후자의 예다’라고 한다. 4. ... 월명사는 신라 제 35대 경덕왕 때의 사람으로 같은 시대를 살다간 충담사와 더불어 선향가자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 이 가운데 월명사와 충담사가 각기 두 편씩을 남기고 있으므로, 향가의 작자는 모두 10명이 된다. Ⅱ.내용. 1) 4구체 향가 1.서동요 ※ 서동요의 특징.
하고 묻자, 충담사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짓도록 하라” 하니 충담사는 곧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 머리말 는 「삼국유사」권 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실려있다. 와 함께 현존 향가 중 가장 훌륭한 노래로 꼽히는데, 이는 이 작품의 뛰어난 수사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⑩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 【원문】 ... 새파란 강물에 기파랑의 얼굴이 비쳐 있구나 여울내 물가에 임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 싶구나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서 서리조차 모르실 화랑이시여. ⑪ 안민가(安民歌) - 충담사
경덕왕 10구체 충담사가 화랑 기파랑의 높은 인품을 기리며 부른 노래 도천수대비가 희명 경덕왕 10구체 희명이 눈먼 자식을 위해 천수대비 앞에 나가 부른 불교 신앙의 노래 ... 10구체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광덕의 불교적인 신앙심을 읊은 노래 제망매가 월명사 경덕왕 10구체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릴 때 부른 추도의 노래 안민가 충담사 ... 경덕왕 10구체 경덕왕의 요청으로 군, 신, 민이 알아야 할 바를 노래한 치국안민의 노래 우적가 영재 원성왕 10구체 영재가 도둑떼를 만나 이를 깨우치고 회개시켰다는 노래 찬기파랑가 충담사
F 왕이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오는지를 묻고 충담사가 이에 대답하였다. G 충담사가 왕에게 차를 끓여 바쳤다. H 충담사가 왕명으로 理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 대부분 경덕왕의 난관 극복의지와 이에 충담사가 참여함으로써 가 창작되었다고 보았다. ... 조동일은 경덕왕이 귀족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화랑이면서 승려인 충담사를 매개로 하여 당시의 재야세력이었던 화랑과의 제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 중에서도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이 시기 향가를 대표하는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처용가〉는 고려시대에 윤색 첨가되어 ... 원왕생가(願往生歌)〉, 득오(得烏)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견우노옹의 〈헌화가(獻花歌)〉, 신충(信忠)의 〈원가(怨歌)〉,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兜率歌)〉와 〈제망매가〉, 충담사의
충담사를 만나게 된 과정을 보면 왜 그럴 필요가 있었던가 살필 수 있다. 오악? ... 이러한 간명한 비유법을 충담사가 구사했음은 그의 의도하는 바가 교훈적 의미의 건실한 전달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 시인 충담사는 의식사적인 측면에서 고행과 수도의 여정을 끝내고 다시 '일상적인 세계로'돌아온 영웅의 경우에 해당한다.
삼산의 신들이 이따금 궁전 뜰에 나타나자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충담사가 지은 노래이다. ... 월명사와 충담사 -경덕왕 때 해가 둘이 한꺼번에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아 왕명에 따라 인연이 있는 승려인 월명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르자 변괴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 -충담사가 화랑인 기파랑을 찬양하고 추모하여 지은 노래로, 와 같이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지만 와는 달리 화랑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으며, 미륵
충담사 역시 월명사와 마찬가지로 귀족불교와는 다른 미륵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 이 작품은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충담사가 지은 향가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향가 작품 중 유일하게 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작품이다. ... 이처럼 작품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관점이 다양한 것은 작자인 충담사가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에 대한 설이 분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