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산참사로 인해 7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잘잘못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 촛불의 물결이 사그러질때쯤,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서민들의 주거지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용산 재개발, 갈 곳을 잃은 서민들의 마지막 선택은 시위였다. ...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명의로 발표된 선언문에는 노전 대통령 관련 정부의 사과, 용산참사 피해자에 대한 해결책 제시를 주장했고 현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위치), 부(한남동)와 빈(용산참사, 용산철거민사태), 서울 대표성(서울의 한가운데 위치, 남산), 풍수(배산임수:북쪽에 남산 남쪽에 한강) 등 수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용산. ... 서울지방의 용산으로 대명사가 된 곳은 한강의 용산강안 용산으로, 이는 오늘날 용산구가 있게 된 자연지세인 것이다. ... 이때 서부 용산방은 21계가 있었으며 오늘날 용산구 일부와 마포구 일부를 관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용산구 지역의 대부분은 한강방과 둔지방 지역이다.
그래서 본론에서는 용산참사와 촛불시위를 사례로 하여 문제를 설명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순성을 분석하여 시위대와 경찰, 각각의 입장과 관점을 비교하여 갈등의 본질적인 원인을 알아보고 ... 비록 유신시대와 5공화국의 철권시대보다는 많이 민주화가 되어왔고, 국민의 인권이 많이 부각되어 왔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현 실태 즉 촛불집회와 용산참사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아직도 인권문제가 ... 민주화시대를 겪으면서 국가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일방적인 국가 공권력 즉 국민의 인권이 무시되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자라왔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 벌어진 촛불집회의 강경진압과 용산참사도
최근 일어난 용산참사, 쌍용 자동차 사건, 민주노총 문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미친 소 수입, 용산참사, 쌍용 자동차 사건, 비정규직 문제, 집회의 강제해산, 경찰들의 강제연행 등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소리들이 자주 들린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용산참사를 말할 수 있다. ... 정말 잘못한 것은 그런 참사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수수방관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다. ... 뉴스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용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릴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한다. 철거민들이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용산참사 후에도 개발반대 집회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용산과 같은 망루에 올라가 시위를 하는 원주민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 그러나 지금 주민들은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가 났던 그날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는 뉴타운 재개발 반대 전국 집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용산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이코패스 열풍을 몰고 온 강씨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청와대가 용산참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막기 위해 연쇄살인 사건을 활용할 것을 경찰에 지시했다”며 “청와대 국민소통비서실에서 경찰청 홍보 ... 그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진행된 용산참사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사이코패스 정권은 국민에게 고통과 희생만 강요할 뿐”이라며 “당장 정상정권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급기야 대통령마저 사이코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