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교장 선생님은 민들레에 있어 바람과 같은 분이시다. 그 분은 민들레 홀씨가 자유롭게 날아가 숲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신 분이 아닌가. ... 특히 가난으로 힘겨워하던 그에게 선뜻 일본 유학비를 건네주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신 아펜젤러 2세 교장선생님은 그의 큰 꿈을 미리 짐작하고 계셨던 것인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의 상면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맥클레이 선교사를 만난 일은 언더우드에게 큰 힘이 되었다. ... 언더우드는 시간만 있으면 아펜젤러 부부와 맥클레이 선교사를 만났다. ... 젊은 신학생 아펜젤러는 밤잠도 잊은 채 읽고는 코리아 선교사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출판되었다고 한다. 1885년 4월 5일, 공식적인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내한할 때 그들 손에는 한국인에 의해 번역된 한글성서가 있었고 이미 국내에는 한국인 매서인을 ... 이 과정에서 로스역은 잠시 아펜젤러에 의해 '누가복음젼'(1890)과 '보라달로마인셔'(1890, '보라(保羅)'는 바울의 한역음으로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라는 뜻)로 빛을 보게 ...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스크랜튼, 헤론 선교사 등은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중국어 단어들로 가득차 있고 형편없는 철자로 인쇄를 했다'는 이유로 로스의 '예수셩교젼셔'를 배제하기 시작한다
한국개신교의 수용과 갈등 (1870년대 말 1880년대 중반 - 1919년) ②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의 활동 : 속지주의 선교방식 : 남방선교루트 : 미국선교사들은 일본에 ... 선교활동을 시작함 ① 매클레이 : 교육과 의료 영역에서의 선교 윤허를 받음 ② 알렌 : 미 공사관 공의의 신분으로 온 의료선교사 :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 설립 ③ 언더우드, 아펜젤러
교양교육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영어학교로 만드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아펜젤러는 줄곧 기독교적 교양교육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 그럼에도 아펜젤러가 영어가 아닌 교양교육에 집착한 것은 조선에서의 영어교습이 직업훈련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 초창기 아펜젤러는 조선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영어를 가르쳤으며, 조선정부가 배재학당 학생을 전신취급원이나 통역관으로 고용하면 정부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기뻐하였다.
헤론이 입국하게 된다. 8월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인 배재 학당을 설립한다. ... 알렌은 갑신정변에서 중상 입은 민영익을 서양 의술로 완치 시켜 왕실의 호감 얻어 선교에 큰 도움을 받는다. 1885년 4월 5일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 또한 아펜젤러는 그 해 10월 서울로 입성하여 한국 최초의 감리 교회로 정동 제일 교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1889년 언더우드 부부는, 신혼 여행 중 서북 지방을 순회 전도하면서 의주에서
그 이듬해 아펜젤러가 교육사업을 통한 선교활동을 위하여 , 스크랜튼이 의료 선교사업을 목표로 각각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맥클레이의 선구적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 4 ... 일련의 과정을 거쳐 1884 년 말 감리교회 소속의 스크랜튼 박사와 아펜젤러 목사 및 스크랜튼 부인이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 . 3) 한국에 선교사 파송 결정 3) 한국에 선교사 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