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어떻게 서야 할지 자신이 없다면 2500년 전, 같은 고민을 한 공자의 인생에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떨까? ... 지난 지금, ‘만세사표’, 즉 만세까지 귀감이 되는 인물로 우뚝 섰다. ... 공자는 함께 공부하는 단계, 함께 도를 터득하는 단계, 함께 도에 서는 단계, 그리고 자유자재로 도를 부리는 단계를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어긋남이
소극적인 서(恕)와 적극적인 충(忠)을 함께 병행하는 것이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논어에 의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 무릇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도 세워주는 것이 서(恕)이고,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남에게도 이루어 주는 것이 충(忠)이다. ... 공자의 생애 공자는 노나라 창평지방의 추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숙량흘이 안씨 집안의 딸인 안징재와 야합하여 공자가 탄생했다.
공자(孔子)는 악(樂)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禮)에 의하여 서고, 악(樂)에 의하여 완성된다. ... 『論語』 : 不知禮 無以立也 여기서의 ‘선다(立’)는 것을 단지 두 발로 서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몸가짐, 올바른 인간관계 유지를 뜻하는 것이다. ... 『論語』 :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 서(恕)는 남을 헤아리는 마음, 배려, 용서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7) 예악(禮樂) 공자(孔子)는 예(禮)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배 계층의 시각에 선 군자,대 ... 서는 남과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다.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그 실천 방법의 구체적인 방안은 충과 서를 말했다. 효는 단순히 몸을 받드는 것이 아니고 정성을 다해 부모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충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논어 論語 보고서 01) 논어 5편 공야장 “나는 아직도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 말에 대해 누군가 말했다. “신정이 그런 사람인데요.” 공자가 말했다. ... 공자는 그러한 삶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준 듯 하다. 11) 논어 제 9장 자한 공자가 말했다. ... 안연은 공자가 아끼던 제자이다. 자로는 그러한 모습에 자신의 용맹함을 내세우며, 전쟁의 상황을 빗대며 공자에게 칭찬받고자한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공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내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중국의 수많은 교육 기관에 공자의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 이와 같이 공자는 반혁명의 상징이자 봉건의 잔재로 인식되어왔다. 현대 중국에서공자의 위상 공자가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개혁 개방 초기부터다. ... 공자는 현대 중국에서 소프트 강화의 수단으로써도 적극 활용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자학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격차 없이 같은 길 위에 서다. ... 술이述而 편 : 어짊으로 무장한 공자의 자태 옛것을 복원하고 부흥시키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 술이부작, 신이호고(述而不作, 信而好古) 공자가 말하길 “계승하되 창작하지 않으며, ... 이에 공자는 세 차례나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 태백의 덕행에 감탄했다.
과목을 듣기 전까지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주장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하는 교육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영상을 보거나 수업을 들으면서 프린트나 교과서에 ... 공자는 6가지 기예를 일반인에게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며, 공자는 배움의 핵심은 자발성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 배움에 관한 공자와 나의 생각 공자는 최초로 학술을 민중화하고, 교육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며, 선비라는 계급을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는 봄에 시, 서, 예, 악을 가르치는 교관이 선사에게 석전을 올렸다. ... 그는 5경을 대신하여 4서를 존중하고 이에 대한 사서집주를 저술해서 명성을 남겼고 이 밖에도 역본의, 시집전 등의 저술활동을 했다. ... 후한의 명제는 주공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으며 공자의 고택을 찾아 석전을 올리기도 했다. 위, 수, 당나라 이후로 공자를 선성, 안회를 선사로 받아들여 석전을 올렸다.
둘레 약 5.5km인 현성(縣城) 성벽 안에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큰 사당인 공자묘(孔子廟)를 중심으로 공자부[衍聖公府]와 공자 일가 역대 자손들의 무덤인 공자림(孔子林)이 있다. ... 취푸공자유적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의 유적. 취푸는 유교를 창시한 공자(BC 551∼BC 479년)의 고향이다. ...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서쪽에 있다. 호수에는 3개의 섬이 있는데, 샤오잉저우섬[小瀛洲島]이 제일 큰 섬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子曰 , “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 有恥且格 ” ―「爲政」 공자 왈 , “정치로 서 백성을 인도하고 형벌로 서 다스리면 ... 덕으로 서 백성을 인도하고 예로 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도 알고 또 생활이 격식 있게 될 것이다 ” 형 ( 刑 ) 이 만능 은 아님 법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 + 최소한의 ... 형식이 통일되어야 함 내용이 형식을 잃어버리면 거칠게 되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하면 공동화 됨 사 ( 史 ) 한 경우 – 광고 카피 야 ( 野 ) 한 경우 – 사회운동 단체의 성명서
중국 중고등 역사교과서에서공자의 부활. ... 중국 중고등 역사교과서에서공자의 부활. 인문학연구, 89(0), 405-438. 6. ... 마오쩌둥은 공자를 무산계급 위주의 공산주의 중국에서 ‘무산계급의 적’이라고 규정하였고, 공자를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이들까지도 숙청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맹자는 말하기를 “천명(운명)을 아는 사람은 위태로운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공자의 사상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 동양고전 - 과 요약문 『논어』는 공자의 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그리고 제자들 간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은둔주의자들은 공자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하였다.
‘근본이 서야 도(道)가 사는 법이다.’ 근본을 바로 세워야 비로소 덕(德)을 쌓을 수 있는 것이며 주변을 이롭게 할 수 있다. ... 그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제자의 제자를 낳아 공자 사후에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 형식으로 정리된 어록이다. ... 서론 『논어』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 B.C.511 ~ B.C.479)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헌이다. 『논어』는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 편찬자는 자신이 아니다.
그는 당시 중국사회를 “끝없이 푸른 하늘과 넓은 대지는 큰 도살장이며 감옥일 따름”(대동서·甲部)이라고 생각하였다. ... 강유 위의 대동사상은 동서양 사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공자의 대동사상, 공양삼세설, 인(仁)사상 등과 서구의 천부인권론과 공상적 사회주의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서 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현군자중 하나인 공자의 사상은 논어를 통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공자에게 인은 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전 생애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인의 체현이야말로 공자의 배움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다. ... 이것이 바로 공자가 제시한 ‘경’(敬)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신’(信)이다. 공자께서는 정치의 으뜸은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라 하였다.
개인적으로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시인 등의 여러 직업 중 공자가 가장 뛰어났던 것은 교육자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선진편에서는 공자와 제자들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엿볼 수 있다 ...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남긴 책이 바로 ‘논어’이다. ... 공자는 이상적인 정치 이론을 펼쳤으나 혼란하던 춘추시대의 군주들은 공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기니 효성과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인 것 같다.”라고 하였다. ... 여기서공자는 군자의 존재를 성인에 가깝게 묘사한다. 공자 또한 군자의 존재조차 만나 본 적이 없으며 성인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 특히 공자는 계속해서 배움을 언급하며 군자는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안회라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굉장히 무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안회의 안빈낙도 정신에 반해서 그를 현자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 현명한 사람은 인생의 포물선을 파악하고 정점에 선 순간 물러날 줄 안다고 한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권력과 관계된 것은 더 그렇다. ... 왕으로서 권위가 서지 않아서였다. 또 특정 부하만 신임해서 결국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데 이게 오만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왕으로서 권위를 내세운 것도 딱히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