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강원도
- 최초 등록일
- 2009.03.03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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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25전쟁중 강원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민족 해방과 38선으로 분단된 강원도
■6․25직전의 강원도
■6․25 전쟁의 발발과 강원도
■유엔군의 참전과 강원도 수복
■학도병의 참전
■중공군의 참전과 강원도
■휴전과 강원지방
참고문헌
본문내용
■민족 해방과 38선으로 분단된 강원도
강원도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감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남북으로 갈라졌다. 강원도 동해안의 양양군 현북면․서면, 중부의 인제군 기린면․남면, 그리고 강원도 서쪽은 춘천군 북산면․신북면․사북면 지역에 38선이 그어졌다. 양양군과 인제군의 절반 이상이 북한 쪽에 속하게 되었고, 춘천의 일부지역도 북한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철원․양구․화천․이천․회양․통천․고성․간성 군이 전 지역이 북한 쪽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3일 트루먼 미 대통령의 일반명령 제1호에 처음으로 38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고, 9월 2일 일본의 항복조인이 끝난 후 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일반명령 제 1호를 공포, 38선을 경계로 미․소군이 분할 점령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강원도 지역은 38선을 경계로 마을과 마을을 갈라놓는 현상을 빚게 되었다.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강대국들의 분할점령으로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6․25직전의 강원도
강원도내에 먼저 진주한 것은 소련군이었다. 양양군․춘천군․인제군으로 차례로 들어온 소련군은 9월말 춘천군 북산면 상리에 1개 분대가 들어와 38선 팻말을 세웠다. 춘천에 들어온 소련군은 행정권과 경찰권을 내놓으라 하였다. 동해안의 주문진과 강릉에도 소련군이 진주했다가 돌아갔다. 소련군이 이렇게 38선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소련군 당국이 8월 25일 쯤 경의선․경원선을 38도 선상에서 차단하고 열차운행을 중단시키면서 미군이 아직도 진주하지 않은 38선 이남까지 들어와도 제지할 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9일 이었고, 미군이 도청소재지인 춘천에 진주한 것은 9월 20일이었다. 이후 강원도 미군정청이 체제를 갖춘 것은 1945년 12월 초순이었다.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 영 소 삼상회담에서 한국을 5년간 미․영․중․소 등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 아래 두기로 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반탁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반탁에 참여했던 좌익세력은 다음해 1월 찬탁으로 돌변했다. 반탁과 찬탁은 우익
참고 자료
『강원도사 - 현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