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분단과 통일과정
- 최초 등록일
- 2008.06.25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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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얄타 협정을 통한 합의와 포츠담 선언에서의 확정으로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되었다.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점령지역은 서독으로, 소련의 점령지역은 동독으로 분단을 맞게 된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동서독은 초기 분단 속에서도 동서독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허용되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이후에도 동서독 주민들은 당국의 허가에 의해 왕래할 수 있었다.
목차
Ⅰ. 시작하며
Ⅱ. 분단과정
1.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의 패전과 분할통치
2. 분단의 공식화
Ⅲ. 통일과정 : 브란트의 동방정책
Ⅳ. 마치며
본문내용
Ⅰ. 시작하며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얄타 협정을 통한 합의와 포츠담 선언에서의 확정으로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되었다.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점령지역은 서독으로, 소련의 점령지역은 동독으로 분단을 맞게 된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동서독은 초기 분단 속에서도 동서독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허용되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이후에도 동서독 주민들은 당국의 허가에 의해 왕래할 수 있었다.
독일의 분단사례는 우리의 분단현실과는 다소 다르다 할 수 있는데, 우선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에 의한 분할점령을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서 감수했지만 우리의 경우 전후처리 과정에 있어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의한 분할(희생)이었다는 것, 두 번째로는 독일의 경우 분단 초기부터 제한적으로나마 인적․물적 교류가 있었던데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분단 초기부터 거의 교류가 없었다는 점, 세 번째로 남한과 서독, 북한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인데, 이는 서독과 동독의 경제 규모의 차이,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와 비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한국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독일에서도 한국전쟁과 같은 독일전쟁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통일 독일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독일의 통일에 있어서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브란트는 베를린 시장 재임시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동․서 진영의 무모한 대결 정책은 독일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독과 대결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통해 작은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된 동방정책은 서독과 동독의 교류를 활성화하여 양독의 관계를 기존의 대결구도에서 새로운 관계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향후 독일 통일의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독일의 분단과정을 살펴보고 통일과정에서의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갖는 의의를 살펴보았다.
참고 자료
정지웅, 「독일통일과 예멘통일의 비교연구」(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대학원, 1993)
백경남, 『독일, 분단에서 통일까지』(서울: 1991, 강천)
이경민, 「예멘과 독일의 통일사례가 한반도 통일에 주는 시사점」(석사학위 논문, 국방대학 교, 2005)
김수남, 『분단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통일문제』
정지웅, 『통일과 국력』(서울: 학문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