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관광 프로그램
- 최초 등록일
- 2008.06.14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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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프로그램입니다.
목차
1)부여, 공주에 대한 전반적 설명 및 프로그램의 목적과 의의.
2)백제 역사 문화 탄방 프로그램
(백제문화 속에서 일본의 문화 관계 비교체험 )
본문내용
1)부여, 공주에 대한 전반적 설명 및 프로그램의 목적과 의의.
백제는 678년 동안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 발전한 국가였다. 7세기 동북아시아의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세력 재편 과정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렇게 덧없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공주, 부여의 역사적 특징을 바탕으로 백제의 전반적인 틀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지금의 공산성인 웅진성의 북쪽으로는 차령산맥이 막혀 있고, 금강이 띠를 두르며 흘러가고 있다.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뻗어 있어 신라로부터 공주 일원을 방어해 주고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가 가로놓여 있고, 남쪽으로는 곡창인 호남평야를 끼고 있다. 금강을 이용한 천연적인 방어선과 해운 교통은 피난 수도로서의 지리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지역을 상실한 상황에서 북쪽의 전황을 빨리 포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비하기에 용이했기에 고구려의 남하로 인하여 문주왕 원년에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공주는 문주왕 원년에 수도로 정해져서 삼근왕․동성왕․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부여의 사비성으로 천도하기까지 5대 64년간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웅진 시대는 정치적으로 국력의 회복과 도약의 준비기였고,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백제문화가 세련되고 국제화된 시기였다.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부여에는 왕궁지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부여로 천도한 백제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호남평야지대의 경제기반과 진취적인 대외 활동을 통해 이 같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다. 그리하여 백제역사상 부여시대(538~660년) 123년은 백제문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을 뿐 아니라 삼국 문화 중 최고의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