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과 김만중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8.06.13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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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지원과 김만중의 문학특징과 작품줄거리를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박지원의 문학
1) 작가론
-연암소설의 일반적 특징
-연암의 문학관
2) 작품론
-광문자전
-민옹전
-허생전
-호질
-예덕선생전
-양반전
2.김만중의 문학
1)작가론
-서포소설의 일반적 특징
-서포의 문학관
2)작품론
-구운몽
-사씨남정기
본문내용
1. 박지원의 문학
1) 작가론
박지원(朴趾源) : 1737(영조 13년) ~ 1805(순조 5년)
조선 후기 북학(北學)의 대표적 학자로, 그의 활동 영역은 소설·문학이론·철학·경세학(經世學)·천문학·병학(兵學)·농학 등 광범위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도 안 되는 밭과 서울의 30냥짜리 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 1752년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으며, 그의 처삼촌인 이양천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 경학(經學)·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특히 문재(文才)를 타고난 그는 이미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者傳)>을 지었다. 1757년 <민옹전(閔翁錢)>을 지었고, 1767년까지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지었다. 1759년 어머니가, 1760년에 할아버지가, 1767년에는 아버지가 별세했다. 아버지의 장지(葬地)문제로 한 관리가 사직한 것을 알고는, 스스로 자책해 과거에의 뜻을 끊었다. 1768년 서울의 백탑(白塔 : 지금의 파고다공원) 부근으로 이사했는데, 주변에 이덕무·이서구·서상수·유금·유득공· 등도 모여 살았고, 박제가·이희경 등도 그의 집에 자주 출입했다. 당시 그를 중심으로 한 ‘연암그룹’이 형성되어 많은 신진기예의 청년 인재들이 그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고, 새로운 문풍(文風)·학풍(學風)을 이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다. 문학에서는 당시 이덕무·유득공·이서구·박제가가 4대시가(四大詩家)로 일컬어졌는데 모두 박지원의 제자들이었으며,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얼 출신이었다. 1780년 진하별사(進賀別使) 정사(正使) 박명원(朴明源)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淸)의 베이징[北京]에 갔다. 5월 25일에 출발해 8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렀고, 10월 27일 서울에 돌아왔다. 이 연행에서 청의 문물과의 접촉은 그의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