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낙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8.05.27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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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르낙 연구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 들어가는 말
Ⅱ. 본론
a. 하르낙의 생애와 신학
b. 『기독교의 본질』
c. 틸리히가 본 하르낙
d. 한계와 의의
Ⅲ. 결론
- 나가는 말
본문내용
아돌프 폰 하르낙은 1851년 5월 7일 도르파트에서 태어났다. 1857년에 그의 모친이 사망한 뒤, 1864년부터는 두 번째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하르낙은 루터 신학에 기울어져 있던 아버지의 신학적 경향에 따라 경건주의적인 신앙 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869년, 부친 테오도시우스 하르낙이 교회사 및 설교학 교수로 있었던 도르파트대학 신학과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곳에서 모리츠 폰 엥엘하르트(Moritz von Engelhardt)에게 영향을 받아 역사 비평적 연구에 관심을 가졌으며, 교회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방향으로서 학문적 관심을 가지게 된다. 1872년 라이프치히로 옮겨와 학업을 계속하던 하르낙은, 1873년 영지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년 만에 같은 주제의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2년 뒤인 1876년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부교수가 되었고, 28세 되던 해인 1879년에 기센대학 신학과의 정교수가 되어 리츨의 신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마르부르크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도 정교수가 된다. 하르낙은 「교리사」,「고대 기독교 문헌사」,「기독교의 본질」,「최초 3세기 동안의 기독교 선교와 확산」등의 책들을 출판하였다. 1921년 정년퇴임을 하고, 1930년 6월 10일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일로 하이델베르크 여행 도중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는 1886년,「교리사」(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제1권을 세상에 내놓음으로 자신의 신학을 펼쳐나갔다.「교리사」를 통하여 하르낙은 최초 6세기 동안의 교회사 및 교리사를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여기서 원시 기독교의 관점에서 후대의 역사를 판단하고자 할 때 적용되어야 할 기준들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가 1900년에 발표한「기독교의 본질」을 통하여 그 기준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그의 관점은, 고대 역사의 영역을 통하여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그 역사적 인식이 현대 신학을 위해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신학사상 119호.2002년 겨울호 정용성 <하르낙과 기독교의 본질>
파울 틸리히.「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대한기독교서회
아돌프 폰 하르낙. 오흥명 옮김 <기독교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