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의 명재상 이덕형
- 최초 등록일
- 2008.05.06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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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중기의 한음과 오성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분의 프로필과 시대적배경 활약상 죽음 그분을 통해 배울수있는 리더쉽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이내용과 관련한 토론 주제도있습니다.
목차
1.한음이덕형의 프로필
2.시대적배경
3.한음이덕형의 활약상
4.한음이덕형의 죽음
5.이정귀의 시
6.한음 이덕형의 리더쉽
7.개인적인 결론
8.토론 내용
본문내용
1613년 - 영창대군의 관직을 삭탈하고 서인으로 함. 폐모론 일어남.
1614년 - 강화부사 정항(鄭沆)이 영창대군을 죽임.
1618년 -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서궁(西宮)이라 칭함. 대북파 정권 장악.
1619년 - 명나라에 1만 명의 원군 파견.
1623년 - 김류 등이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綾陽君) 추대, 정권을 잡음(인조반정).
1624년 -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킴.
1627년 - 후금이 조선에 침입(정묘호란). 인조가 강화로 피신.
1628년 - 2월, 명나라의 숭정연호(崇禎年號)를 사용.
1633년 - 척화(斥和)의 교를 내리고, 후금의 침략에 대비케 함. 임경업(林慶業)을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에 임명. 상평청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전.
1636년 - 후금의 국서를 거절. 금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 옴. 청군 침입(병자호란).
1637년 - 강화도 함락됨. 인조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 인조 환궁. 왕세자 일행 불모가 되어 선양[瀋陽]에 도착. 명나라 연호를 폐지하고 청나라 연호를 씀.
1580,선조13년 에 별시문과의 을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감.
교리와 대사성등을 거쳐 서른 두살에 예조참판 겸 대제학됨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한음은 외교관으로서의 재능을 발휘
조선왕조역사상 최연소인 31세에 문형(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성균관사등세개 기관장을 겸직하는 사람)에 추천될만큼 당대 최고의학문과 덕망으로 국내는 물론 이웃중국과 일본에서도 이름을 널리 알려져서 임진왜란때는 왜적이나 명나라 장수들이 한음 선생만을 대화상대로 고집하였다는 기록도있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