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삼은의 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8.03.29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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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말삼은(이색, 정도전, 이숭인)의 시세계를 감상하고 이해한다.
목차
1. 여말삼은
2. 목은 이색 - 한포농월,동정만애,부벽루,견회,잠부
3. 포은 정도전 - 춘흥,복주식앵도,다경루증계담,정주중구한상명부
4. 도은 이숭인 - 촌거,제승사,호종성남,곡둔촌,오호도
본문내용
14세기 후반 약 50년 동안은 한국 한문학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시기였다. 그것은 여말에 수입 보급된 성리학이 당시 한국 유학에 뿐만 아니라 한문학에도 크게 영양한 바 있어, 새로운 문풍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이전의 한국에 있어서의 한문학은 곧 유학이요 따라서 유자는 곧 문인이어서 양자를 서로 떼어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여말에 이르러 성리학이 차츰 연구 보급되면서 차츰 양자를 나누어 구분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후일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크게 강성하면서 엄격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은 경향이 시작된 하나의 과도기적시기가 곧 14세기 후반부터였고, 삼은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요 한문학자였다.
여말에 당시 몇몇 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흥학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은 혼란과 암운 속의 고려왕조 마지막을 장식하고, 새 시대의 진폐를 약속하는 그런 생동적 거사였으니, 이는 주로 당시 성균관의 학관들에 의하여 전개 추진되었다. 그 핵심적 인물이 바로 삼은 즉, 목은 이색과 포은 정도전 및 도은 이숭인 그들이었다.
이 운동은 아직 수입된지 나날이 얕아지던 성리학 연구를 한층 촉진시켜서 종래의 사장 위주였던 유학에서 벗어나, 성명 이기를 강론 탐구하는 새로운 유학으로 전환하여 학술과 유풍을 크게 일신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사장학의 구습을 완전히 탈피하기에는 시기 상조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관료 출신 문인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각종 국가적 관찬의 제술 즉, 경세문장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외교상의 시문 수응에 필요했던 사장을 경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경학과 아울러 사장학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일도 함께 도모해야 했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장을 하되 경학을 바탕으로 하는 사장으로서 이른 바 「재도지기」로서의 문장을 모색 지향했던 점이 그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으며, 곧 이것이 삼은으로 대표되는 여말 한문학의 하나의 큰 특미이었다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후일 조선 관학계를 지배했던 권근, 변계량 등에게 전승되면서 조선시대 한문학의 연원을 이루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