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
- 최초 등록일
- 2008.02.24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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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원성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수원 신도시 건설의 목적
1. 정치적 목적
1. 경제적 목적
Ⅱ. 건축사상과 축성계획, 17세기의 문제제기와 18세기의 실천
1. 기존 성제의 반성과 산성의존 전통
2. 17세기, 기존 성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
3. 예외적 지식인들, 17~18세기 산성전통에 대한 본격적 도전
Ⅲ. 다산 정약용의 수원성 축성계획
1. 성설(城說): 수원성 축조 기본계획
2. 도설(圖說): 방어시설 건축 계획
Ⅳ. 수원성 화성의 완성
1. 완성된 수원성의 재원
2. 18세기적 양식미와 기능미
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1. 의궤(儀軌)의 간행
2. 공사방식의 새로운 변화
Ⅵ. 19세기~21세기의 수원성
본문내용
Ⅰ. 수원 신도시 건설의 목적
1. 정치적 목적
수원은 정조 13년인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를 이전하면서 새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이전되었다. 이어서 1893년에는 명칭을 화성으로 고치고 유수의 직급을 정2품으로 삼음으로써 수원은 조선 제 2의 도시가 되었다. 물론, 사도세자의 신령이 이 모든 계획의 전면에 나섰다. 신령을 위로하고자 조선 최고의 명당터에 무덤을 옮기는 것이었고, 뒤이어 기존 읍 하나를 전부터 보아온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졌다.
곧 정조의 지휘 아래 막강한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설치함으로써, 동시에 상인을 유치하여 각종 경제적 특혜를 주어 경제적으로 번영시킴으로써, 수원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서울을 빼고는 견줄 상대가 없는 대도시의 요건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도시의 목적은 한마디로 왕권강화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막강한 군사력과 튼튼한 경제력을 구비한 신흥도시를 배후에 둠으로써 구세력들이 진을 치고 있는 서울을 견제하면서 왕의 지위와 권한을 키워 나가고자 한 것이었다. 한양과 조정은 이미 노론(老論)계 세력들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고, 도성 시전상인들 역시 그들의 편이었던 것이다.
2. 경제적 목적
18세기 조선사회는 활발한 상업활동에 의해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상업발달은 자연히 활발한 물품의 전국적인 유통을 실현시켰고, 전국 방방곡곡의 물품은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되게 마련이다. 조선 후기 모든 물품의 집합처는 역시 서울이었지만, 지방의 중요 물품산지는 삼남지방이었다. 수원은 삼남의 물품이 서울로 이동하는 간선도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에 지리적으로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구 수원읍 지형의 궁벽함은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원활한 물류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새 수원읍의 입지조건은 전통적인 도시 입지관에서 말하는 풍수지리상 명당터도 아니고 방어상 요충지도 아니다. 그러나 사방으로 개방된 길들이 시원하게 이어지는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키고 있으며, 팔달산 아래 새 읍치는 평탄하게 열리고 광교천에서 흘러들어오는 개천이 역시 북에서 남으로 흐리고 동편에는 낮으막한 경사지에 형성되어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이고 폐쇄적인 구조를 갖춘 구 수원읍이 전통적 도시라면, 개방적이고 교통이 편리한 신 수원읍은 근대적인 도시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1. 수원화성 홈페이지: http://cosguide.com/culture/hawsung
2.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김동욱, 돌베게, 2002년)
2. 18세기 건축사상과 실천 (김동욱, 발언, 1993년)
3. 수원성 (김동욱, 대원사, 1989년): 「빛깔있는 책들」의 문고판 (Vol.24)
4. 수원화성과 정약용 (이정범, 이희근, 서강출판사, 2005년)
5. 수원의 화성 (신영훈, 김대벽, 조선일보사, 1999년)
6. 꿈의 문화유산 화성 (유봉학, 신구문화사,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