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역사학 - 서양사회와 문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왕의 춤’으로 바라 본 절대적 존재
2. 예술로 태양왕이 된 루이 14세
3. 태양왕과 주변인들의 관계
4. 루이 14세가 얻은 민심
5. 결론
본문내용
1. ‘왕의 춤’으로 바라본 절대적 존재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면 눈을 실명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절대적인 왕의 권위가 최고로 다다른 시기에는 태양만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루이 14세이다. 젊은 루이 14세는 오직 음악과 춤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마자랭이 죽은 뒤, 절대적인 권력을 쥐려 한다. 그에게 모후와 귀족들의 충고는 들리지 않았다. 왕은 춤을 통해 자신을 태양만큼 높은 존재로 거듭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갖는다.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몰리에르와 륄리는 왕에게 노래와 희극을 바치고, 왕은 그것을 귀족과 성직자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2. 예술로 태양왕이 된 루이 14세
루이 14세의 예술을 가장 중요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만든 궁정이다. 루이 14세는 1651년에 가서야 성인식을 치르면서 모후 안느 도트리슈의 섭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미 재무대신이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를 숙청하면서 정치적 파란을 예고했던 젊은 태양왕은 1661년 더 이상 재상을 두지 않는 국왕의 직접 통치를 선언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의 절대군주로서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파리에서 서쪽으로 1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큰 궁전을 건설하도록 한다. 1661년 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정원사를 고용하여 돈을 물 쓰듯 하였다. 1664년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면서 ‘베르사유’라는 궁전을 완성하게 된다. 이곳에서 왕은 수백 개의 방을 만든 뒤 값비싼 가구와 장식들로 가득 채웠다. 게다가 궁전에서는 오락회, 음악회, 무도회, 연회가 매일 이어졌고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그랑 꾸베르(Grand Couvert)라는 회식이 열렸다. 따라서 루이 14세의 음악과 춤, 그리고 희극이 모두 함축된 곳이 베르사유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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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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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http://ko.wikipedia.org/wiki/ , 프랑스의 루이 1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