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 최초 등록일
- 2007.12.18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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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제일의 궁궐이며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장소 경복궁, 가장 많은 왕들이 집정했던 곳이며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합방의 조인식이 열린 장소 창덕궁, 창경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돌아가신 선왕의 여러 왕비들을 위해 새롭게 지은 궁으로 장희빈이 처형당하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창경궁,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잠저였는데, 여기에 왕기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던 곳 경희궁,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아관 파천하여 러시아 공관 옆에 있던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된 덕수궁 이렇게 5개의 궁이 있다. 이중 ‘덕을 빛낸다.’는 뜻을 가진 창덕궁은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적 제 122호로 약 14만평의 규모를 갖춘 창덕궁은 조선 3대왕 태종 때 경복궁이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고 하여 정궁으로 다시 짓고자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이궁의 용도로 지어진 궁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일명 동궐로 불리던 조선 시대의 궁궐 창덕궁은 창건이후 5백여 년간 역대 제왕의 허다한 희비극을 연출하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이궁이면서도 정궁으로서의 체모를 갖추었다.
목차
머릿말
1. 왕조의 이궁인 창덕궁.(창덕궁의 역사)
2. 주요전각.(사진포함)
3. 후원.(사진포함)
맺음말
본문내용
1. 왕조의 이궁인 창덕궁.
경복궁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 때 전부 소진되었으나 광해군3년에 중건된 창경궁은 대원군이 정궁을 재건할 때까지 250여 년간의 정궁역할을 하였다.
▷ 중종반정과 연산군 : 재위 12년간 나라 다스림이 포악하고 음탕하며 인륜을 유린하는 극악에 다다르자 1506년 9월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창덕궁에서 쫓겨났다. 이는 조선왕조 600년 중 맨 처음 발생한 정치혁명이다.
▷ 광해군과 인조반정 : 명나라와 청나라사이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등 외교수완을 발휘하였던 광해군은 당쟁에 이끌려 형 임해군,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모시켜 인륜이 끊기고 인도가 막혔다며 1633년 3월 왕좌에서 쫓겨나 제주도로 유배되고 귀양살이 중 생애를 마쳤다. 굴욕의 병자호란을 마친 후 효종이 북벌을 추진한 곳도 창덕궁이다.
▷ 영조와 정조 : 현종 ~ 숙종 35년간 서인과 남인의 정권쟁탈로 창덕궁을 무대로 한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여러 사화 후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핀 영조 때 수그러드나싶었지만 영조도 참소를 분간치 못하고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게 하여 동관대궐의 정치무대는 평온치 못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사도세자의 둘째아들 정조는 즉위하면서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학술 및 정책연구기관으로서 조선왕조의 문예 진흥을 불러일으켰다.
▷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밖으로는 조선, 청, 일본 세 나라의 관계가 미묘한 국면으로 치달았고 안으로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두 세력이 대립하여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이것들 역시 창덕궁이 중심무대가 되었다.
▷ 망국의 한일합방과 그 이후 : 1910년 8월 29일에는 한일합방 조약이 인정전에서 만들어졌으며 나라를 빼앗긴 창피한 날이므로 국치일이라고도 한다. 1917년 겨울 대조전 서쪽에 있는 나인의 갱의실에서 불이나 동쪽의 내전이 대부분 불에 탔으며 이 불로 보관하고 있던 많은 책과 그림 등 귀중품이 사라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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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서울, 인천, 경기」최선웅, 이순용 저 (성지문화사)
「서울명소체험하기」정일승 저 (한림출판사, 2002)
「서울시내 일제유산 답사기」정운현 저 (한울, 1995)
「내 고향 문화유산을 찾아서 上」김윤기 저 (한국토지공사 홍보실, 1997)
「차차차 부자의 고궁답사기」차준용, 차승목 저 (미래 M&B, 1998)
「한국의 발전 서울」서울특별시 저(뿌리깊은나무,1986)
「재발견 한국의 문화유산」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속원, 1997)
「서울 六百年」김영상 저 (대학당,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