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복고적 산문의 흐름
- 최초 등록일
- 2007.11.2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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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등장배경
2. 의고문의 성격
3. 인물로 본 의고문
1)최립
2)유몽인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고문이라는 것은 중국 당송시대 사대부 층에 의해 창출된 것이다. 고문은 변려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고전적인 산문으로 되돌아가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우리나라의 文의 흐름을 살펴보면 삼국, 고려 시대에는 변려문 쪽으로 발달하였다. 고려 중기에는 무인정권이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민심과 유리되어 종막을 내렸다. 그래서 정권을 담당한 세력이 형성되지 않아 고려 왕실은 원의 힘에 의탁해 지탱해있었다. 신진사대부 역시 왜곡되어 주체적인 자세를 갖지 못하고 여전히 雕蟲篆刻을 장기로 삼았다.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던 익재는 시대의 병폐를 바로 잡으려면 사대부의 인간자세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문풍을 개신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유교 고전을 기본교과로 삼아서 학교제도를 착실히 운용하여 인재를 성취시키면, 실학을 버리고 장구나 익히는 폐풍이 사라질 것이며, 자연히 雕蟲篆刻之徒는 經明行修之士로 탈바꿈 할 것이라고 하였다. 실학을 하여서 유교의 고전에 바탕을 두어 건전한 교양과 인격을 갖춘 인간 타입의 經明行修之士를 형성하는 것이 익재의 소망이었다. 이에 實이 있는 문학으로 고문이 추구되었던 것이다.
훈구파들에 의해 문학이 사장적으로 흘러감에 따라 기묘사림들은 산문창작에 있어서 先秦兩漢의 고문을 전범으로 삼아 새로운 문풍을 형성하려했지만, 그들의 개혁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기묘사림들의 이러한 노력은 조선중기 의고문 수용의 내재적인 요인으로 남아 있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前後七子의 문학이론과 작품이 수용됨에 따라서 조선 문단에도 복고적인 문풍이 유행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수용된 전후칠자의 문학의 영향으로 일어난 조선 중기 문단의 복고적문풍의 유행과 그 성격을 알아보고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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