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이제현, 조선 성리학의 인도자
- 최초 등록일
- 2007.04.0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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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제현이 살았던 시대배경과 그의 생애
(1) 시대적 배경
1) 제 1기 : 修學 및 仕宦 初期 (1~27세)
2) 제 2기 : 在元 活動期 (28~35세)
3) 제 3기 : 盡忠報國期 (36~53세)
4) 제 4기 : 著述 活動期 (54~64세)
5) 제 5기 : 仕宦 末期 및 老年 (65~81세)
2. 이제현, 조선 성리학의 인도자
1) 익재 이제현의 성리학적 사상
2) 익재의 시에 나타난 성리학적 사상
3) 익재의 고문창도
3. 결론
*보론
<역옹패설(櫟翁稗說)> 이란 무엇인가?
본문내용
1. 이제현이 살았던 시대배경과 그의 생애
(1) 시대적 배경
益齋는 고려가 40여년 간의 對蒙抗爭을 포기하고 강화도로부터 出陸還都 하여 원나라에 예속된 지 17년 후인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원이 망하기 1년 전인 1367년 (공민왕 17) 에 죽기까지 80평생을 원의 고려 지배라는 未曾有의 民族受難期에 살았다. 한 마디로 그의 일생은 원의 고려에 대한 內政干涉 과 온갖 무리한 요구에 따른 忍從 과 屈辱 의 시대와 때를 같이 했다고 할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는 6대왕(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 공민왕) 을 섬기며 국가의 중역을 두루 역임하고 또 81세의 壽를 누림으로서 영예롭고 복된 삶을 살았다고 하겠지만 반면에 원과의 국가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혹 문필로 혹 외교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국가의 존망을 걱정해야했다. 또 附元輩 와 姦臣들의 질시와 모함의 대상이 됨으로써 늘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의 생애는 활동 내용에 따라 편의상 5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제 1기 : 修學 및 仕宦 初期 (1~27세)
이 시기는 익재가 父親(이진), 丈人(권보), 師傅(백이정)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아 익재는 성리학을 白頤正으로부터 수학하였고, 丈人인 權溥가 『四書集註』를 판각ㆍ보급하였으며, 또 부친 李瑱이 安珦의 천거에 의해 經史敎授都監使를 역임하였다.
학문 연마에 정진하는 한편, 벼슬길에 처음으로 나아가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던 때라 하겠다. 곧 사상형성과 학문진전의 기틀을 마련하고 의욕적인 삶을 영위했다고 할 수가 있다.
2) 제 2기 : 在元 活動期 (28~35세)
이 시기는 익재의 일생 중 가장 得意에 찬 시기였다. 충선왕이 元 仁宗을 도와 중국의 내란을 평정하고 武宗을 옹립한 공이 있었으므로 麗元간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원만하였고, 또 익재 자신이 上王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원나라 碩學들과 交遊 익재가 28세 되던 해(1314, 충숙왕 1) 1월에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元都로 가게 되었다. 이 때 충선왕은 충숙왕에게 讓位하고 자신은 太尉로 있으면서 元都에 萬卷堂을 짓고 학문 연구로 즐거움을 삼고 있었는데, “京師의 文學士들은 모두 천하에서 선발된 사람들인데, 나의 府中에는 아직 이런 사람이 없으니 나의 수치이다.” 하고 원나라 문사들에 대적할 인물로 익재를 불렀던 것이다. 당시 만권당에 드나들었던 원나라 학사들과 從遊함으로써 학문이 더욱 성취될 있었다. 따라서 만권당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학문적, 사상적인 면에서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는 한편, 중국을 周遊하며 자신의 文才를 마음껏 발휘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여행에서 익재는 장엄한 산하, 기이한 풍속, 옛 성현들의 유적, 역사적인 고적들을 두루 涉歷 함으로써 見聞을 넓히고 奇氣를 기를 수 있었다. 이것은 곧 그의 活汗한 문학세계의 바탕이 되었다.
익재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고적을 대상으로 읊은 시는 전체 시의 1/5이상을 차지하며, 그 대부분이 詠史詩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