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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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희망봉을 돌았던 모험가 디아스, 그 4년 뒤인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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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희망봉을 돌았던 모험가 디아스, 그 4년 뒤인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초등학교 시절 귀 아프게 들어온 이름들이지만, 그보다 거의 100년 앞섰던 중국 명나라의 해양왕 정화는 고교 세계사 책에 단 한 줄 이름만 비친다. 그가 이끌었던 배가 길이 150m짜리 초대형 정크선으로, 콜럼버스 배의 12배였다는 사실도 미처 소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균형을 잃어온 세계사의 일방적인 `최초` 기록들을 갈아치우는 도발적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명제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 상식엔 두 가지 편견과 하나의 무지가 들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주장은 지극히 유럽 중심주의적인 편견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밟기 전에 이미 그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신대륙’이라는 명칭 또한 그 자체가 편견이다. 거기에는 정복자들을 위한 개척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콜럼버스 명제가 갖고 있는 하나의 무지에 대한 도전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유럽 중심주의에 도전했고,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이 미국사를 통해 민중과 제３세계의 관점에서 승리자의 역사에 저항한 선구자였다면, 멘지스의 이 책은 유럽 중심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사’에 대한 사실적 전복의 종합판이다.
이 책이 전복적인 이유는 콜럼버스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사람들이 중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사실 이런 주장은 중국학자 웨이쥐셴의 『중국인의 아메리카 발견』을 포함하여 1천 권이 넘는 책에서 이미 여러 번 제시되었다. 이 책의 전복성은 실증성에 있다. 이 책은 명대 영락제（永樂帝） 때 정화（鄭和）의 함대가 1421∼1423년간의 제6차 남해 원정 기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이 영국 왕립 지리학회에서 발표될 때 36개국 20억여 명에게 생중계된 것은 이 책이 갖는 서사 구조의 흡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사실적 전복이 설득력이 있었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사실 ‘정화의 남해 원정’에 대한 선행 연구는 멘지스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특히 아시아 교역권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학자들은 그 중심에 있었다. 미야자키 마사카쓰（宮崎正勝）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7차까지 이루어진 남해 원정의 규모와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멘지스처럼 콜럼버스의 니나호와 비교함으로써 세계사의 유럽 중심주의적 해석과 대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1421∼1423년 사이에 이루어진 제6차 항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문제의식의 결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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